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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 끝 바람으로 버무린 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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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28면

왼쪽부터 피리피리 그릴치킨, 비프스테이크 스페셜 프란세진야. 포르투갈이 원산지인 에그타르트도 직접 만든다.

홍대 근처에 자주 가는 편이다.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근처에 자리를 잡아온 때문인지 거리 분위기부터 다르다. 요약하면, 감각적이고 예술적이면서 쿨하고 자유롭다. 상업 지역이기는 하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돈을 요구하기보다는 세련된 방법으로 지갑을 자연스럽게 열게 하는 곳이 더 많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52> 타버나 드 포르투갈

맛있는 음식점도 많다. 소박한 작은 건물이 많은 지역이다. 집세가 싸고 작은 규모로 쉽게 시작할 수 있어서 처음 독립하는 실력 있는 셰프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골목 골목 숨어 있는 맛집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휴일이면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가 부끄러운 듯 조용히 자리한 작은 맛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곳 골목길에서 찾아낸 ‘타버나 드 포르투갈(Taverna de Portugal)’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포르투갈 음식점이다. 작고 아늑하면서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맛이 있다.

오래전 스위스로 호텔 경영을 공부하러 유학 간 한국 처녀가 있었다. 실습하러 나갔다가 동갑내기 포르투갈 셰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3년쯤 사귀다 결혼을 하고 함께 직장을 찾아 런던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사보이·포시즌 같은 유명 호텔에서 셰프로 일하고 아내 역시 호텔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11년을 살던 아내는 이제 한국에 있는 가족이 그리웠다.

한국에서 이들 부부는 각각 취직을 해서 일을 하다가 자신들만의 레스토랑을 만들어 독립을 하기로 했다. 홍대 근처에 아주 작은 식당을 차리고 단 둘이 시작했다. 한국에 온지 3년 만인 2013년 11월이었다. 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인 아고스티노 다 실바(Agostinho Da Silva·45)와 부인 이희라(45)씨 부부의 이야기다.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스페인 음식들이 조리법상이나 시각적으로 다소 화려하게 발전해 온데 비해 포르투갈 음식은 투박하고 기교를 많이 부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하는 음식 재료들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요리 방식이 대부분 단순하다.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잠깐 반짝한 이후 점차 쇠락해서 서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나라가 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역시 나라가 잘 살아야 요리도 발전하는 법이다. 대신 요리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리는 소박한 가정식 요리가 잘 발달했다는 것이 아고스티노 쉐프의 설명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은 ‘비프스테이크 스페셜 프란세진야(Francesinha) 샌드위치’와 ‘피리피리(Piri piri) 그릴치킨’이다. ‘프란세진야’는 포르투갈 북부의 전통 음식 소스다. 맥주·와인·진·위스키·포트와인 등 여러 가지 술에 토마토 소스를 섞어서 끓여 만든다. 맛은 약간 시큼하면서도 상큼하다. 이 샌드위치는 토스트용 빵에 비프 스테이크·소시지·햄·베이컨 등의 육류를 겹겹이 쌓아 올려 일단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모차렐라 치즈를 녹여서 감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샌드위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 프란세진야 소스가 이 육류 샌드위치의 맛을 느끼하지 않게 잡아주면서 맛의 특별함을 선사한다.

피리피리 그릴치킨은 고추로 만든 소스를 닭에 발라 오븐에 구워낸 것이다. ‘피리피리’는 포르투갈어로 고추라는 뜻이다. 붉은 고추에 마늘·올리브 오일·소금 그리고 쉐프만의 특별한 비밀 처방을 추가해 소스를 만든다. 고추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올리브 오일이 매운 맛을 중화하는 역할을 해서 그저 살짝 매콤한 수준이다. 두 번 구워 기름기가 빠진 촉촉한 치킨이 맛깔스러운 ‘피리피리’ 소스를 만나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감칠맛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에 포르투갈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처음 맛보는 멋진 ’치맥’ 조합이 결성됐다.

‘대항해시대’의 영웅들,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마젤란의 고향인 포르투갈에서 만드는 이국적이면서도 소박하고 정겨운 음식이 궁금한 분들은 이곳에 한번 가보시면 좋겠다. 조용하고 수줍어 보이는 부부와 포르투갈 전통 음악인 ‘파두(Fado)’가 반겨줄 것이다. 역시 꾸밈이 없고 진정성이 느껴져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소박해서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 음식들처럼 말이다.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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