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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33>|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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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맥아더」장군이 대통령의 차를 앞세우도록 지시하려하자 대통령은 『오늘은 개선장군이 먼저 환영을 받아야하오. 장군의 차를 앞세우시오. 이것은 한국국민 전체의 뜻이요!』하고 우리차를 장군의 차 뒤에 따르도록 했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길을 서울로 향해 달렸다.
먼지 사이로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얼마나 한 맺힌 눈물을 흘려보낸 강이었는가.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고 한강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중앙청엔 포연 자욱
다리는 모두 폭격으로 부서져있었다. 차는 한강을 건너 강둑을 올라가서 마포를 지나 서대문 쪽으로 달렸다. 서울의 시가는 무참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전쟁이 할퀴고 간 도로변에는 영양실조로 수척해진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대통령을 보자 눈물을 홀리며 만세를 부르고 손을 흔들어 환영해주었다.
대통령과 나도 감격하여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교차로마다 모래주머니로 방어벽을 만들어 놓았는데 굶주린 서울시민들을 북괴군이 총칼로 위협하고 강제동원하여 만든 것이라고 했다.
시가지로 들어설수록 공산군들의 살육과 방화와 파괴의 흔적이 더 심하게 드러났다.
중앙청 역시 검게 그을고 유리창은 모두 박살이 났는데 아직도 매연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멀리서는 아직도 포성과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시내에는 게릴라들이 숨어서 가끔 급습을 해오므로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린 다음 중앙청현관을 지나 중앙홀로 들어갔다.
아직도 연기냄새가 사방에서 나고 있었다. 구리로 된 둥근 돈은 찌그러져 있었고 가끔 천장에서는 작은 유리조각이 떨어져 내려왔다.
군인들과 남자들은 모두가 있었지만 우리쪽으로 떨어지면 안전할 수는 없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달랑거리고 유리파편이 떨어져 내려 신경이 곤두섰지만 기적적으로 다친 사람은 없는 모양같았다.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맥아더」장군은 수도 서울의 기능과 권한을 한국정부에 돌려준다는 요지의 훌륭한 연설을 감격어린 어조로 말했다.
대통령도 이에 감동하여 연합군의 노고에 감사하고 전사한 유가족에 위로를 보내며 승리자로서 적에 관용을 보일 것을 바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환도식후 북진명령
『비범한 군복무의 기나긴 생애를 통하여 장군이 이룩한 모든 업적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서 역사는 국제연합군을 이끌어온 장군의 통솔력을 기록에 남길 것으로 본인은 확신합니다』라고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을 찬양했다. 「무초」대사는 자신과 미국정부에 관해 몇마디 연설을 했다. 「맥아더」원수는 주기도문으로 엄숙히 식을 끝냈는데 우리 모두는 함께 주기도문을 따라 외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악대도 의장대도 없었지만 참으로 감격적이고 의미있는 환도식이었다.
중앙청에서 식이 끝난 뒤에 대통령은 「맥아더」원수에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지체없이 북진해야하오. 그들은 재편성할 시간이 없을 것이고 저항도 없을 것입니다.』 「맥아더」장군은 국제연합이 38선을 넘도록 자기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보였다.
대통령은 장군에게 『국제연합이 이 문제를 결정할 때까지 장군은 휘하부대를 데리고 기다릴 수가 있지만 한국군이 밀고 올라가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아니오?
국군이 평양입성을
여기는 그들의 나라요, 장군이 우리군대에 공중지원을 한다면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오. 내가 명령 안해도 우리국군은 북진할 것입니다.』하고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은 9월28일 하오 2시에 대구육군본부에 들러 정일권 참모총장과 그의 참모장군들 (강문봉 양국진 황헌친 최경연 김형일)에게 38선의 존재여부를 물었다.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자신의 뜻과 같이 이미 38선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정참모총장에게 국군의 북진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은 이자리에서 7월12일 「맥아더」장군에게 편의상 넘겨주었던 우리의 작전권은 우리가 필요할때 언제나 대통령의 권한으로 회수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또 대통령은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정장군에게 평양은 우리 국군이 먼저 입성할 것과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를 유엔군에 앞서 진격하여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맥아더」장군도 대통령의 의중을 이해했지만 어디까지나 국제연합의 결정에 의한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의견이었다.
우리는 군용점심을 들고 난 뒤에 경무대로 향했다.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경호원과 경무대 직원들이 아직도 정리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선발대로 올라온 경무대식구들이 들어왔을때 경무대 내부는 엉망진창으로 악취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엉망진창된 집무실
이선영경사가 제일 먼저 대통령집무실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남일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고급양복 웃저고리가 걸린 채 양말까지 널려 있더라고 한다.
남일이 너무 황급히 도망치느라고 양복도 버려두고 양말도 제대로 못신은 채 떠난 모양같다는 보고였다.
그리고 남일과 공산당 고위관리들이 마시다 남겨둔 채 버리고 간 소련제 양주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 전리품들을 승전선물로 여기저기 보냈다.
「무초」대사에게는 보드카 2병과 백포도주인 부르뉴 2병을 선사했고 「노블」과 「워커」장군에게도 몇 병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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