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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20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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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도쿄 총국장

‘OCT.21 2015’.

 1980년대에 인기를 끈 SF영화 ‘백 투 더 퓨처 2’의 설정 시계는 2015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인공인 고교생 마티와 천재 과학자 브라운 박사가 타임머신 차 ‘드로리안’을 타고 ‘30년 미래’인 올해로 온 것이다. 영화에는 온갖 첨단기기들이 등장했다. 영상통화가 가능한 대형 벽걸이TV, 태블릿 PC, 웨어러블 가상현실 안경, 원터치 주문 시스템, 지문인식 도어록….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그냥 익숙한 생활용품이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꿈같은, 조금은 허황된 이야기였다. 지난주 30년 만에 다시 이 영화를 보고 감탄했다. “어떻게 80년대에 30년 뒤인 2015년을 이렇게도 정확히 예측했을까.”

 영화 속 드로리안은 가솔린과 플루토늄을 병용한다. 쉽게 말하면 요즘의 하이브리드차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세계에선 이보다 훨씬 친환경적인 수소차(FCV)가 등장했다. 가솔린 한 방울 쓰지 않는다.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만든다. 매연이 나올 리 없고 수증기만 배출된다. 드로리안도 흉내내지 못했던 획기적인 완전 무공해 신개념 차량이다. 그냥 아이디어 단계가 아니다. 현대차와 일본의 도요타가 시판을 시작했다. 영화 속 ‘꿈’을 넘어선 것이다. 물론 30년간의 꾸준한 진화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현실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백 투 더 퓨처 2’와 같은 80년대. 영화와는 정반대로 시계추를 ‘30년 전’으로 돌려보자.

 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최초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국교정상화 이후 첫 정상회담이었다. 이듬해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답방해 ‘새로운 동반자 관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일왕은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야말로 ‘미래의 꿈’을 그렸던 시기였다. ‘30년 뒤’ 으르렁거리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한·일의 지도자, 상대방의 인격을 폄하하고 ‘상종 못할 이웃’으로 여기기 시작한 한·일의 국민이 돼 버린 오늘날 현실에선 이 같은 ‘30년 전’에 창피하고 쑥스러울 따름이다.

 다시 눈을 돌려 ‘30년 뒤’ 2045년을 상상해 본다.

 일본에선 독도여행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한·일 중고생이 공동 역사교과서로 공부한다. 하나의 전력망 체제로 전기를 서로 나눠 쓴다. 한·일 해저터널 완공으로 부산~후쿠오카를 1시간 이내에 주파한다. 해저터널 한가운데 위치한 해상 휴게소 이름은 ‘플라타너스(버즘나무)’. 꽃말은 ‘용서’와 ‘화해’다. 또 아나. 30년 뒤 “어찌 그리 정확히 예측했나”란 소리를 들을지.

 단 한 가지. 환상적 미래는 그냥 오는 게 아니다. 마음이 부르지 않는 데 다가오는 건 없는 법이다. ‘백 투 더 퓨처 2’가 오늘날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주는 가르침이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