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잊은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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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람 (이병기옹) 의 시조 한 수가 생각난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좁고 답답한 집에서 무더운 하루를 보내는 심정을 읊은 노래. 바로 그 시조의 끝자락이 인상적이다.
- 손에 호미 잡고 밭에 풀을 매어 보라/내리쬐는 불볕 괴롬 또한 어떠하리/도리어 일 없는 이몸 부끄러움이어라. .
요즘 같은 무더위에 세상은 온통 돌아앉아 부채질이나하고 있을 것같다. 그러나어제 중앙일보 사회면은 바로 그 더위와 싸워 이기는 사람들의 얘기를 엮고 있었다.
어느 수출산업공단의 한 섬유업체 종업원들은 휴가도 아랑곳없이 밤낮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추석전에 선적을 끝내야지요. 우리가 쉬면 60여개 봉제업체도 따라 쉬게 됩니다.』
60대의 공장장은 아마 꿈을 꾸어도 수출일 것같다. 이들에게 더위 얘기는 얼마나 한가하고 사치스러워 보일까.
『참는 것은 희망의 기술이다』는 말이 있다. l8세기 프탕스의 모럴리스트 「보브나르그」 가 『회상록』에 남긴 말이다. 지금 이 더위 속에서도 남 모르게 일하는 뭇 사람들의 인내와 극기가 없다면 우리 사회와 그 개개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오늘의 사람들은 현대문명이 베푸는 「편리의 늪」에서 저마다 자연스러움을 잃으며 살아가고 있다. 더위와 추위는 오늘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온도계의 눈금에 그처럼 민감할 수 없다.
자연에 적응하고 극복하기 보다는 쉽게 포기하고 마는 소극성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생물 가운데 사람만큼 적응이 빠른 경우도 없다. 극지의 혹한 속에 살던 사람도 열대에 넉넉히 적응할 수 있다. 덩치 큰 사자들이겨울만 되면 온실로 파고 드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더위도 결국은 느끼기 나름이다. 더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더위를 끝내 벗어나기 어렵다. 차라리 다른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
어쩌면 인류의 문화는 인내와 극복의 소산인 것같다.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이 어디 하나라도 있는가.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포드」의 전기를 보면 그가 공장을 순시하다가 충격을 받는 얘기가 나온다. 추운 겨울날인데, 한 이탈리아 종업원이 내의 한 벌만 입고도 예사로 일하고 있었다. 「포드」와 함께 공장을 돌아보던 그의아들 「에인절」이두꺼운 스웨터를 입고도추워하는모습이 민망스러웠다. ·
「포드」는 이때 생각한 바가 있어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 보장제도를 궁리했다는 일화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광로 앞에서 혹은 아스팔트 위에서, 아니 모든 산업전선에선 여전히 모든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호황과 함께 오히려 더 바쁜나날들이다.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잊을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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