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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사람 쌀 퍼 가는 '나눔의 쌀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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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전시 중구 태평1동 사무소 직원과 같은 동 복지만두레 회원들이 독지가에게서 기증받은 쌀을 '나눔의 쌀독'에 담고 있다.

20일 오후 2시쯤 대전시 중구 태평 1동 사무소 한켠에는 50kg 들이 항아리에 쌀이 가득 담겨 있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항아리에는 "나눔의 쌀독-쌀이 필요하십니까? 언제든지 찾아 주십시오"란 설명글이 붙어 있었다.

이처럼 대전시내 대부분의 동사무소에는 큰 쌀그릇이 있다. 대전시가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비치해 놓은 '복지만두레 나눔의 쌀독'이다.

쌀은 대전시의 동 단위 사회복지 네트워크인 '복지만두레' 회원을 비롯한 주민들이 기증한 것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은 쌀을 동사무소측이 독에 채워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원하는 만큼 가져간다.

태평1동 사회복지사 이연숙(40.여)씨는 "정부로부터 제도적으로 생계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쌀이 없어 굶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실제로 혼자 살면서도 부양 가족이 있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 등이 주로 쌀독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쌀독은 지난 5월 중구 부사동사무소에 처음 등장했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을 못 받는 저소득층이 자존심 때문에 동사무소에서 쌀을 직접 타 가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본 복지만두레 회원들이 "쌀독을 설치해 놓고 자발적으로 쌀을 가져가도록 하자"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그래서 동사무소에 50kg들이 항아리를 비치, 쌀을 기증받아 독에 채워 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했다. 그러자 매달 2가마(160kg)쯤 쌀이 나갔다.

쌀독은 다른 동사무소로 계속 확산돼 현재 전체 80개 동사무소 중 저소득층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63곳에 설치돼 있다.

쌀독은 항아리나 나무로 만든 뒤주 등을 주로 사용하고, 크기는 40kg에서 80kg까지 지역 별로 제각각이다. 이름도 '나눔의 쌀독' 외에 '사랑의 쌀독' 등 다양하다.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능한 한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에 독을 설치하고, 개방 시간(오전 8시~오후 8시)도 공무원 정규 근무 이외 시간까지 포함시켰다. 일부 동사무소에서는 3kg정도씩 쌀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독안에 넣어 두기도 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계속 늘어 요즘엔 시 전체에서 하루 평균 300여kg이 나간다.

독지가들의 참여도 잇따라 6월 쌀독을 설치한 태평1동사무소의 경우 자영업을 하는 박모(여)씨가 매달 100kg(25만원 상당)씩을 고정적으로 보내 온다. 또 같은 동네에 사는 70대 할머니는 최근 동사무소를 방문, 10kg짜리 쌀 한 포대를 기증한 뒤 끝까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사라졌다.

◆복지만두레=사회복지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는 사람들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돕도록 하기 위해 대전시가 지난해초 도입한 제도. 현재 회원 및 자원봉사자가 1만9000여명, 수혜자가 8900여 가구에 달한다. '만두레'는 우리나라 고유의 상부상조 공동체인 '두레' 가운데 논 김매기 등 가장 중요한 행사 때 구성되는 공동체를 뜻한다. 시는 최근 특허청으로부터 상표(업무표장) 등록도 받았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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