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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30 와글와글

회사생활과 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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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같은 자리에 모여서도 〃회식에 술은 필수요소〃라는 '주류(酒流)'와 '비주류(非酒流)'로 나뉘어 앉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직장인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주류'들을 향해 비주류들은 〃신세대의 회식은 달라야 한다〃며 반기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최현석.유기남.임윤정.정회영.배수정.임준형.노진호씨.[강정현 기자]

-각자 회사의 술자리 문화에 대해 말해 주세요.

▶유기남=소위 닷컴업체라 음주문화가 자유로워요.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마셔도 됩니다. 본부장께서 요리가 취미여서 댁에서 회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만드는 것도 꽤 재미있더라고요.

▶배수정=전 홍보업무를 하다 보니 술 마실 기회가 많은 편이죠. 우리 회사도 회식 땐 술 마시기보다 점점 문화생활을 많이 하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윗분'들이 신세대 사원들과 어울리려고 문화공연 등을 제안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요즘 후배들은 "술 마시자"고만 하면 "전 그럼 빨리 들어갈래요" 하며 몸을 사리거든요.

▶최현석=저흰 공식적인 회식은 항상 1차에서 끝납니다. 술자리가 길어진다고 인간적인 분위기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1차 끝나면 자연스레 헤어지자는 분위기가 되죠. 따로 몇 명이 더 마시러 가기도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임준형='현대 계열사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고들 생각하시는데 우리도 많이 변했습니다. 저도 입사했을 때 술을 못 마셔서 걱정했죠. 막상 들어와 보니 안 마신다는 사람 억지로 먹이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평균적으로 다른 회사보다 많이 마시는 편이긴 하지만요. (웃음)

▶정회영=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맥주 업체라고 무조건 술을 많이 마실 거라고 상상하셨다면 그건 선입견입니다. 단체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 분위기보다 삼삼오오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일을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즐기고 싶어 마시는 분위기죠.

-대부분 직장생활에서 술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배수정=전 직장생활에서 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하기 힘든 얘기를 꺼내거나 얽혔던 문제를 풀려면 술이 최고거든요. 물론 주사를 부릴 정도로 마신다면 문제가 되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요즘 신세대들이 '회식은 모두 모여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실망스러워요. 회식은 직장생활의 일부, 일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직장 얘기가 오가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유기남=하지만 전 직장에서 못다 한 얘기가 꼭 술이 있어야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인터넷 메신저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도 있잖아요. 전 종교 때문에 술을 자제하고 있어요. 개인의 가치관이나 종교 때문에 안 마시겠다는 사람은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준형=개인 차이가 크군요. 전 누군가 "아깐 섭섭했지?" 하며 메신저로 말을 걸어오면 메신저 로그아웃을 해버릴 것 같아요. 쑥스러워서요.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할 땐 한 자리에서 얼굴을 봐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섭섭한 거 푸는 데 솔직히 술만 한 해결책이 없어요. '다른 사람과 공동의 범죄를 저지르면 친구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술도 비슷하게 사람을 엮어주는 것 같습니다.

▶배수정=맞아요.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문제예요. 전 싫은 술 마시게 하는 상사보다 혼자 술 안 마시겠다고 하는 사람이 더 얄밉더라고요. 저도 일로 술 마시는 일은 많지만 다 좋아서 마시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정회영=전 음주의 기본 목적은 "마시고 싶은 사람과 마신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술은 마시고 싶은 사람과 마시면 즐겁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괴롭지 않나요? 마시기 싫은 사람에게 강요는 절대 할 수 없는 거고요.

▶노진호=술로만 친해지겠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저희 회사는 매달 영화를 한 편씩 보는 이벤트를 열어요. 세 편 정도 영화를 보고 나서는 생맥주집에서 영화 얘기를 하죠. 가끔 등산도 하고요. 그러고 나면 같이 한 경험이 많아서인지 화제가 훨씬 풍부해져요. 평소에 그 사람에게선 못 보던 색다른 면도 보이고요.

-그럼 잠깐 화제를 바꿔볼까요. 회식할 때 술을 마시게 되면 주로 어떤 종류로 드시나요?

▶여기저기서=맥주. 와인. 오십세주. 백세주.

▶노진호=우리 회사에는 여성분들이 많아서 부드러운 술이 인기죠. 폭탄주 같은 건 없어요. 간혹 소주에 사이다를 타거나 맥주에 콜라는 타서 마시기도 하지만요. (웃음)

▶배수정=소규모 회식에선 폭탄주가 돌기도 하죠. 못 마시는 사람은 흑기사(대신 술 마시기를 자청하는 사람)를 찾고요.

▶임준형=저희 회사는 아직 소주나 폭탄주도 꽤 마십니다. 하지만 회식 횟수 자체가 줄었어요. 공식적인 회식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하는 것 같아요. 삼삼오오 모이는 술자리는 만들기 나름이겠지만요.

▶일동=(회식이 줄었다는 데 동감하는 아우성)

-요즘 회식이 줄고 술을 덜 마시는 게 불경기의 영향이 있을까요?

▶임준형=그럼요. 저희 회사는 환율.유가가 오르면서 회식이 확 줄었다는 게 느껴져요. 회식문화가 변한 건 오래된 일이지만 회식 횟수 및 음주량이 변한 건 올 4월부터 뚜렷해진 것 같아요. 대다수 대기업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배수정=맞아요. 예전엔 1박2일로 야유회도 가곤 했는데 요즘 거의 없어졌죠.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개인 시간을 안 뺏기려고 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상사가 등산 가자고 했는데 아무도 안 나와서 팀장 혼자 등산한 부서도 있는 걸요.

▶임윤정=그러고 보니 주 5일제가 정착되고 나서는 회식 요일도 바뀐 것 같아요. 금요일 저녁에 회식을 잡으면 다들 싫어하죠. 그래서 회식 날이 목요일로 바뀌었어요.

-술자리 문화가 회사마다 참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 거라고들 예상하세요.

▶정회영=사람들 생각이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어요. 사회 전체가 점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잖아요. 술을 억지로 마시는 문화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까요?

▶유기남=직장인들이 술에 익숙한 게 대학에서 길들여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대학의 술 문화가 바뀌면 회사 문화도 바뀔 거라고 봐요. 술이건 아니건 회식에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겠죠.

▶배수정=오늘 제가 '음주 예찬론자'같이 들렸을 수도 있겠네요. (웃음) 회사는 친목회가 아닌 만큼 회식 문화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어요. 앞으로는 신세대 직원들을 껴안기 위한 여러 시도가 더 많아질 것 같아요. 어떤 방식이든 회사 내 소통이 더 활발해져야 할 거예요.

▶노진호=유행에 민감한 저희 회사의 분위기를 보면 미래가 상상이 돼요. 술을 앞에 놓건 커피를 앞에 놓건 상사들과 격의없이 수다를 떨죠. 다들 클럽 문화에 익숙해서 같이 춤추면서 놀고 나면 단합도 더 잘돼요.

▶일동=(웃으며) 웨어펀사 회식자리 한번 가 보고 싶군요. 꼭 초대해 주세요~.

정리=박성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