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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 여권 '국가 정체성'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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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사 지휘권 파문이 대한민국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하고 있다. 청와대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전면전 양상이다. 박 대표는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 "구국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한때 대연정 대상이었던 박 대표를 향해 "냉전 독재체제를 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색깔론의 총궐기"라고 규정했다.

"민주체제 무너지면 자유가 어디 있나"
박근혜 대표 작심하고 비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지난해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여야가 대립했을 때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보안법을 사수하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보안법 폐지는 불발됐다. 외형상 박 대표의 승리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다른 해석도 나왔다. "박 대표가 강경보수 이미지를 심어줘 잃은 것이 많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후 박 대표는 정치문제보다는 민생경제에 집중해 왔다.

박 대표가 18일 '국가 정체성' 카드를 다시 빼들었다. 당 안팎에선 지난해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박 대표의 "국민과 함께 구국운동" 방침을 놓고 "과잉 대응 아닌가. 이러다 정기국회가 파행되겠다"는 걱정도 있었다.

박 대표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자유민주체제를 흔드는 것은 지진과 마찬가지며 근본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며 "체제가 무너지면 자유가 어디 있나. 여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4.19 정신도, 5.18 정신도 함께 안고 가야 할 소중한 역사지만 만경대 정신까지 품고 갈 수는 없다"며 "강 교수 한 사람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체제를 위협해 4000만의 자유를 위기로 몰 수는 없다"고 했다.

박 대표는 현 사태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권 차원의 계획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그는 "남북관계에서 정권의 업적을 쌓겠다는 정략적 목적으로 북한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체제를 위협하면서까지 북한이 가장 강조하는 주한미군 철수, 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는 것을 보니 그런 의심을 받아 마땅하다"는 말도 했다.

박 대표가 강공을 펴면서 정국은 급속히 이념 대결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박 대표를 집중 공격함에 따라 박 대표는 자연스레 보수진영 안에서의 주도권을 쥐는 모습이다. 이번 공방의 득실을 쉽게 따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가영 기자

"냉전수구 유신독재 망령 되살아났다"
청와대가 앞장서 반격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여권이 총력 집결했다. 당.정.청이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8일 기자회견에서 "체제 수호를 위한 구국운동을 벌이겠다"고 한 데 대한 반응이다.

선봉은 청와대가 섰다. 야당 대표의 회견에 청와대가 공식 입장으로 각을 세운 것은 이례적이다. "냉전 수구 세력" "유신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등 표현도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청와대는 "한 교수의 주관적 주장 하나로 나라가 무너져내린다는 억지.과장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신시절의 인혁당 사건을 거론하며 "이런 야만의 시대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이 합법적 수사 지휘를 검찰권 훼손으로 모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도 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한나라당의 매도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색깔론 공세만큼은 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김 대변인은 이어 '청와대 입장'을 정리한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의 정무점검회의 발언을 일일이 소개했다. 회의의 한 참석자는 "한나라당이 색깔론을 앞세워 구국운동에 나서겠다는 것은 오만불손한 독선"이라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박 대표 발언에서 유신 시대의 구국봉사대가 연상된다"고 했다. "소가 웃을 일"이란 표현까지 나왔다.

이날 회의에는 이 실장 외에 조기숙 홍보수석,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 전해철 민정비서관과 김 대변인이 참석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가 난데없는 구국투쟁 운운하며 정기국회를 온통 정쟁의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고 공격했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도 "박 대표가 재선거 때문에 이런다면 코미디고,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거들었다. 문 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정.청이) 미리 입을 맞춘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다 같은 생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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