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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1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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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군은 계속 더 많은 병력과 장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반면에 적은 방어선 도처에서 준동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썼다. 나는 이 편지들을 장대사, 「올리버」박사(이승ㅁㄴ대통령 정치고문)등에 전달, 대통령의 뜻이 각게에 알려지도록 했다.
오늘 정오에 라디오뉴스를 들으니 한국전에서는「던커크」)(1940년 독일군의 포위망에 갇혔던 영국군이 철수했음)가 없을거라는 얘기였다.

<옷사입을 형편안돼>
그러나 어젯밤부터 총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이제는 총격전이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같다.
미군들은 기대이상으로 잘 싸우고 있기는하다.
미군기들이 계속 출격은 하고있으나 적군을 완전 분쇄하거나 적의 사기를 꺾어놓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신념을 잃지 않는한 하느님도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우리를 구원해줄 기적을 바랄뿐이다.
「워커」장군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진정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워커」장군의 전술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을 삼가야겠다.
대구의 더위는 한층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사정도 보통문제가 아니다. 물이 부족해서 우리 내외빨래도 나는 물사정을 봐가며 해야했다.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두었거나 도중에 뿔뿔이 흩어져 홀로 내려온 정부요인들이나 황비서관·경호원들은 옷을 사입을 형편도 못돼 군복을 얻어입었고 빨래도 손수했다.
남자들 빨래솜씨로는 비눗물이 덜빠지게 마련이다. 가끔 지사관저 뒷마당 빨래줄에 땟국물이 덜빠진 남방셔츠가 널려있어도 물이 귀해 손봐줄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를 깁거나 올이 다 닳아 구멍이 나기 직전의 빨래들이었다. 너무나 딱한건 팬츠였다. 해지기직전의 천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노블」참사관이 갖다준 침대시트를 침모와함께 밤새껏 말라 팬츠를 여러장 만들었다.
이 팬츠를 조지사부닝네게 주어 직원들 숙소에 갖다 놓도록했다.
지사 관저앞에 있는 양조장과 덩치가 좀 큰집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정부관리와 사회각게인사들의 공동합숙소였다.
방이 부족해 모두들 새우잠을 자거나 차례가 늦은 사람은 앉아서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귀해 빨래못도와>
밤중에 누군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때는 자던자리를 뺏기는 것으로들 알았다.
자동차가 부족해 지프에 4∼5명씩 끼여타는 콩나물시루 신세들이었다. 장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나 없이 등허리에 땀띠가 깔려도 정신없이들 뛰어다녔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편해 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충성스런 사람들뿐이었다.
8월9일.
전시내각(국방·내무·교통·상공·재무장관)이 긴급소집되었다. 이 자리에선 치안경찰을 4만5천명으로, 전투경찰을 4만명으로 각각 증강하는 문제등 몇가지 긴급한 현안이 진지하게 논의됐다.

<미군, 사전통고안해>
우리는 경찰에대해 △유엔군이 북진할 때 치안을 유지하고△준동하는 공산게릴라들을 격퇴하는 임무를 부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전시내각은 또 비상시에 정부를 어디로 옮겨야 하는가하는 문제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정부는 제주도로 옮겨야 하겠지만 자신은 대구를 사수하겠다고 말했다.
종군기자들은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1시간내로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라는 통고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이미 떠나버렸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았는데도 미군기들의 활동이 전혀 없었다. 적군의 탱크10대가 왜관을 건너왔다. 미군들은 계속 후퇴만 하는 것 같다.
8월10일.
어제 일어난 일을 얘기해야겠다. 전시내각의 회의가 끝난 뒤 낮12시30분쯤 임병직외무장관이 혼자찾아왔다. 자유중국대사가 자기를 찾아와 정부를 어디로 옮길것인가를 문의해왔다는 얘기였다.
임외무장관은 정부를 이동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샤오」(소총인) 자유중국대사는 매일아침 전황브리핑에 참석하는 자신의 무관이 미군대위로부터 미8군은 1시간내로 이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노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종군기자들도 이미 짐을 싸놓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이미 떠나버렸다.
9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특파원드른 미군장교들에게 다른 5대의 공산군 탱크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조정환외무차관도 이 브리핑에 참석,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조차관은 또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이미 부산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밤새도록 그리고 오전내내 우리 비행기나 기차의 움직임은 없었다.
미군사령부에 문서를 배달하는 우리경찰요원들은 한미군으로부터 『당신들도 우리와 함께 울산으로 가는겁니까?』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우리 경찰들은 『긍0prp 우리는 이동하지 않는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때 통역을 맡은 tkfkadOrl로는 미군들은 사전에 미리 얘기해주는 법이 없고 항상 마지막 순간에 말을한다고 투덜댔다.
대통령은 외무장관에게 『당장「무초」대사에게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를 왜 한국정부에는 사전에 통고해주지 않느냐고 따져보라』고 호통을 쳤다.
이제는 도시(대구) 전체에 온갖 루머와 긴장감이 파다했다.

<적탱크 절반 파괴>
외무장관이 다시 돌아와「무초」대사는 그러한 루머에 몹시 분개하고있으며 오히려 한국인들이 악성루머를 퍼뜨리고있다고 비난하더라고 보고했다.
이같은 와중에서 내각은 도지사 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국방장관을 불러 상황보고를 받기로 결정했다.
하오3시쯤 국방장관이 와서 적은 미군의 강력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틀전에 우리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8일밤 적군 1천5백명이 10대의 탱크를 앞세워 우리방어선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미군기들은 이탱크들을 집중공격, 그중 5대는 파괴했으나 나머지 5대는 도피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적을 맞아 용감히 싸우고 있으며 적의 탱크를 반드시 무찔러 쫓아내겠다는 결의에 차 있기는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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