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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 사회에서 이 말이 없었더라면 살아갈 수 없을 뻔했던 한국인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1호 21면

문득 이 교수의 얼굴이 시골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21세기 ‘지(知)의 최전선’을 논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거시기 머시기’란 말이 튀어나온 탓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골 장터라면 몰라도 탈구축이니 해체이론이니 하는 서구의 포스트 모던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토픽이었다.

이어령의 知의 최전선 <19> 거시기 머시기

그래서 물었다.

“정확히 거시기 머시기가 뭔지, 그리고 그게 어째서 한국적 사고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기자의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 교수는 늘 하듯이 컴퓨터의 에버노트를 열어 자료를 꺼내 보여준다. “그런데 내가 직접 말하기에는 좀 거시기 해서 그러는 건데 몇 해 전에 미국 교민이 올린 글이야. 한번 읽어봐요.”

기자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신혼 초다. 남편과 뉴스를 본다. 뉴스는 물론 영어로 쏼라거린다. (남편 막 흥분해서) “야, 저놈 진짜 머시기 한데!!!…”(그리곤 말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뒷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참다못해)“머시기가 뭔데?”
“아, 왜 그거 머시기 있잖아.”
“글쎄 그 머시기가 뭐냐고?”
“아, 그 거시기하고 머시기한 거 그거 몰라?”
“글쎄 그 거시기하고 머시기한 그거가 도대체 뭐냐고?”

밤을 새워도 그 머시기하고 거시기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남편은 수십 년 동안 하루종일 영어만 쓰다가 막상 집에 돌아와 한국말을 하자니 딱 떠오르는 말이 없으면 뭐든지 ‘머시기’로 표현했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나는 처음엔 그 머시기를 알아내려고 말도 시키고, 화도 내보고, 갈구기도 하고, 지근지근 약도 올렸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글쎄, 그게 머시기라니까’ 였다.

그렇게 같이 살다 보니 이젠 남편의 ‘머시기’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척하면 머시기’의 내공이 쌓인 것이었다. 

글을 다 소개할 수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거시기 머시기의 글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아, 오늘도 정말 머시기한 하루였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이 영어에도 머시기란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와차마컬잇(whatchamacallit-what you may call it)이 그것이다. 이 말이 없었으면 미국 살면서 정말 머시기할 뻔했다.”

이 교수와 나는 모처럼 만에 한참을 두고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 끝이 촉촉했다. 그러고 보니 이 교수의 글로 테마관을 꾸몄던 201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가 바로 ‘거시기 머시기’였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빡빡한 데카르트 아이들이 싸우는 이 지(知)의 최전선에서 질식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거시기 머시기’의 방독 마스크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거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뭔가 분명히 우리가 서로 알고 있는 것,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안개에 쌓인 그 무엇 말이지.”

셰익스피어를 낳은 영어지만 그걸 말하려고 하면 ‘what you may call it(이걸 뭐라고 부르지)’처럼 한참 긴 문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한국말로는 그냥 ‘거시기’ ‘머시기’ 라고만 하면 다 통한다. 이 교수가 덧붙여 말했다.

“정 부장, 서양 사람 뒤통수 보고 따라가느라 참 힘 많이 들었잖아. 개화기 때부터 지금까지 말야. 그런데 스마트폰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데도 이걸 좀 보라구.”

미국산 거시기 머시기의 이름이 붙은 초콜릿(사진)이었다. ‘와차마컬잇(whatchamacallit-what you may call it)’.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콜릿이었지만 언젠가 한번은 이 교수를 모시고 함께 먹어보고 싶었다.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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