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무형 특보 … 자주 못 보면서 대통령에 직보할 수 있겠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1호 03면

생색내기인가, 소통 의지인가.

전직 실세 특보 3인이 말하는 ‘박근혜 특보단’

이완구 총리의 기용만큼 눈길을 끈 건 청와대 특보단의 구성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특보단의 필요성을 피력한 이후 11일 만에 실행에 옮긴 셈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특보단이다. 민정(이명재)·안보(임종인)·홍보(신성호)·사회문화(김성우) 등이 고루 포진돼 있으며 조만간 정무특보도 발표할 예정이다.

“각계각층과 두루 소통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드러났다”며 여당은 환영한 반면, 야당은 “김기춘·문고리 3인방 유임을 가리기 위한 물타기”라며 시큰둥한 표정이다. 과연 특보단은 30% 지지율로 추락한 박근혜 정부의 반전 카드가 될 수 있을까.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전직 실세 특보들에게 특보정치의 생생한 현실을 들어봤다.

대통령 측근도 특보 되니 눈치 보더라
“이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온다. 딴지를 걸려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걱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특보를 지낸 김병준(61) 국민대 교수는 박근혜 특보단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대통령 특보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명함 특보. “특보라는 이름만 내주는 거다. 일종의 자리 나눠주기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는데 아무것도 맡기지 않으니 대통령으로선 조금 미안한 마음이고, 본인도 체면 안 선다고 투덜대니 특보라고 명함 하나 파게 해주는 거다. 대신 국정엔 일절 관여 안 시킨다. 이런 사람은 사고만 안 치면 된다.” 대통령 통치상 ‘필요악’이란 설명이다.

둘째는 ‘비선 불식 특보’다. “대통령과 가까운 거 주변에서 다 알고 국정 운영에 관련돼 대통령과 자주 의견 교환하는데 이런 분 내버려 두었다간 괜히 ‘비선 실세’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그래서 특보로 임명해 공식화시키는 경우다. 대표적 예가 이강철 특보”라고 했다.

셋째는 실무형 특보다. 진짜 일하는 특별보좌관이다. 청와대 내부나 청와대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마련해 상근케 하면서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내도록 하며, 이를 토대로 대통령과 정례적으로 만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선 공식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할 수도 있다. 명칭만 특보일 뿐 청와대 참모진의 하나로 명실공히 활동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번 특보단은 실무형 특보에 가깝다. 하지만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이 아니다. 서먹한 사이에서 어떻게 시중 여론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하겠는가. 반대로 대통령의 의중을 어찌 정확히 꿰뚫고 온몸 던져 이를 밖에 전파하겠는가”고 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특보단을 분석한 결과 38명의 특보 중 청와대 근무 경력을 갖고 있는 이는 13명(34%)이었다. 여기에 장·차관이나 총리 등을 지낸 인물을 더하면 70%에 육박했다. 대통령 측근이 업무의 연속 선상에서 특보로 재기용됐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특보였던 이동관(58)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 역시 비슷한 취지였다. “2007년 당내 경선부터 인수위, 출범 이후 대변인·홍보수석 등 나름 MB 측근 아니었나. 그래도 특보가 되고 나선 청와대 가는 게 눈치 보였다. 일부러 내가 보고하러 가는 걸 수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물며 다른 특보들은 어쨌겠는가. 대통령과 의례적인 회의는 했겠지만 아마 제대로 독대 한번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또 “민정·안보·홍보 등 기존 청와대 조직을 그대로 옮겨놓은 점도 이번 특보단의 아쉬운 점이다. 자칫 업무 분장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갈등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 사회특보였던 박형준(55) 국회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부 때는 IT특보를 두었다.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녹색성장 한다며 IT 분야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처럼 대통령 특보는 공식적인 기구에서 다 커버하지 못해 자칫 소외될 수 있는 부문을 다독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번 특보단은 분명 전문성을 갖췄다. 괜히 가까운 사람을 중용했다가 ‘친박 챙기기’ ‘회전문 인사’ 얘기가 나올 것을 염려한 대통령의 고민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특보의 제1덕목인 ‘대통령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과연 이들이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김병준 교수는 신설된 민정특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민정특보는 없었다. 특보의 기본 임무는 소통 아닌가. 그럼 민정특보를 둬 국가정보원·검찰과 소통하겠다는 얘기인가. 괜히 사정기관을 장악하려 한다는 오해만 살 것이다.”

장기적 안목 갖고 유연하게 일해 장점
특보의 대우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청와대 특보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업무활동비만 지급된다. 김 교수는 “특보의 대우 역시 천차만별이다. 상근해야 기본적으로 사무실·직원 등이 배치되며 업무활동비 명목으로 월 300만∼500만원가량 받는다. 상근하지 않으면 활동비도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특보는 현직과 겸임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변호사(이명재)나 언론사 간부(김성우)가 청와대 특보를 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김영란법’의 이해충돌 방지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반발하자 이명재·김성우 내정자는 각각 현직을 그만뒀다.

이동관 총장은 “사실 특보 대우 문제부터 청와대 수석과의 신경전이 시작된다”고 전했다. 그는 “2011년 특보 임명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청와대에서 근무하길 원했다. 그러려면 대통령령을 고쳐야 하고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했다. 보좌진이 난색을 표해 결국 청와대가 아닌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 사무실을 냈다”고 했다. “청와대와 거리는 1㎞ 정도밖에 안 되지만 새삼 청와대 담장이 높다는 걸 그때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특보는 어떨 때 필요한 자리일까. 박형준 사무총장은 “수석은 매일 터지는 일을 수습하기에 급급하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사안을 대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때 특보의 역할이 요긴하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언론사에 비유하면 청와대 수석이 정치부·경제부·사회부라면 특보는 기획특집부나 탐사보도팀”이라며 “그만큼 긴 호흡을 갖고 사안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서 대통령을 보필하는 게 특보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번에 터진 ‘연말정산 대란’이 대표적인 경우다. 과연 청와대 특보가 있었다면 일을 이렇게 키웠을까 싶다. 이번 사안은 단지 기획재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바뀐 연말정산으로 어떤 혼란이 초래될 수 있는지, 불만이 터지면 이를 설득할 논리는 무엇인지 등을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그건 홍보나 정무 분야에 속하기도 한다. 청와대나 정부부처가 칸막이에 갇혀 있을 때 특보는 이를 관통해서 사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박 사무총장은 “특보의 중요 역할은 리베로”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 역시 “굉장히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게 특보의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내가 2011년 특보를 할 때 학자들과 협업을 통해 노무현 정부 정책을 77개의 보고서로 만들었다. 잘했든 못했든 우리가 한 일을 다음 정부에 전해줘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박 사무총장은 “수석은 공식 지위라 누굴 만나도 책임 있는 코멘트를 해야 한다. 서로 간에 부담스럽다. 반면 특보는 편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공식과 비선의 경계선인 셈이다.

김 교수는 이런 일화도 전했다. “임기 말엔 대통령 주재 회의를 해도 분위기가 어둡다. 아무도 말을 안 하려 한다. 힘없는 대통령 앞에 누가 나서 일을 맡으려 하겠는가. 그럴 때 공식적 자리에 있지 않은 특보가 이야기를 툭 던져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벗이 되는 게 어쩌면 임기 말엔 나에게 더 중요한 역할이었을지 모른다.”

사람들 꼬여 민원창구로 전락할 수도
특보의 폐해는 없을까. 김 교수는 “민원 창구가 되기 쉽다”고 했다. “괜히 대통령 특보라고 하면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이권에 휘말리고 자칫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옥상옥 논란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박 사무총장은 “무 자르듯 업무가 구별되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20∼30%는 겹치는 게 서로를 의식하게 만든다. 청와대 수석과 특보는 상호 견제하기도 하지만 보완하고 완충하면서 자연스레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면 국정에 오히려 활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장은 “특보는 한마디로 메기”라고 했다. “메기가 어항에 들어가면 미꾸라지가 살려고 펄떡거리게 되지 않나. 마찬가지로 다소 침체되고 딱딱해진 청와대에 특보가 투입되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특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윤활유에 불과하다”는 게 세 사람의 공통된 결론이다. 특보 개인의 역량보다는 대통령이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진단이다.

김 교수는 “특보 제도 자체가 효과를 내는 게 아니다. 모든 건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지금처럼 경직된 시스템이라면 특보가 수십 명 들어와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이름만 특보일 뿐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한 경우도 숱하다. 어떻게 업무를 나누고 누구에게 무슨 임무를 줄지는 철저히 대통령 몫이다. 특보단 성공의 키는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