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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잃을 게 없다” 희망 잃은 사람 정조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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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10면

지난해 12월 미국이 주도한 이슬람국가(IS) 공습에 나섰다가 전투기가 추락해 생포된 요르단 공군 소속 무아스 알카세아스베 중위(가운데 흰 셔츠 입은 사람)가 IS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미국은 지난해 8월부터 2000회에 걸쳐 IS 장악 지역을 공습했지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AP=뉴시스]

먼 나라의 악몽인 줄 알았던 이슬람국가(IS)의 악행이 한국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18세 청소년 김모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IS와 접촉하더니 IS의 본거지와 가까운 터키 국경에서 실종됐다. 그가 남긴 흔적으로 봐 IS에 합류한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와 함께 시리아에서 IS에 납치된 일본인 인질 두 명도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갈수록 세력을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일 프랑스의 풍자만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난입해 12명을 학살한 파리 테러도 IS와 알카에다가 서로 손잡고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은 물론 가톨릭·유대교·정치인·극우파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성역 없는 풍자를 해왔는데도 IS 테러의 표적이 됐다. 중동 지형도는 물론 세계 평화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IS 위협의 실체와 글로벌 모병의 실태를 알아본다.

새로운 위협, IS의 글로벌 모병

 캐나다 온타리오주 출신의 안드레 풀린은 인터넷에선 유명 인사다. 2012년 시리아로 떠나 IS에 합류하면서 이름을 아부 무슬림 알캐나디로 바꾼 그는 2013년 여름 현지에서 교전 중 24세의 나이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인터넷에 공개된 비디오에서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AK-47 자동소총을 어깨에 걸친 채 앉아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하키 경기를 관람했고, 여름에는 오두막 별장에서 지냈으며 낚시를 즐겼다. 이슬람을 만나기 전에는 당신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캐나다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서구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일상적인 삶을 살았던 보통사람이었음을 강조하며 무자히딘(이슬람 전사)도 이처럼 보통사람임을 강조한다. (캐나다의 CBC방송에 따르면 풀린은 캐나다에서 평범한 삶을 산 것은 아니다. 그는 문제아였으며 범죄 기록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구에 사는 ‘형제’들에게 무슬림 땅에서 전쟁을 벌이는 정부를 위해 세금을 내지 말고 자신들이 가진 의료 기술이나 엔지니어 기술을 IS를 위해 써달라고 호소한다. 비디오는 세련되게 편집됐으며 그의 말 중간중간에 하키 경기를 즐기는 모습, 눈 덮인 주유소 등 북미 풍경을 삽입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다른 인물이 북미 액센트의 영어로 풀린이 어떻게 시리아 전선에서 이슬람의 대의를 위해 싸우다 최후를 맞았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참호에 쓰러져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도 보여준다. 마치 한 편의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 같다는 느낌이다. IS는 이 비디오를 수시로 인터넷에 다시 올리고 있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과격화와 정치적 폭력 연구 국제센터’의 피터 노이먼 연구원은 1만2000명의 외국인 전사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IS에 가담했다고 추정했다. 최고 2만 명에 이른다는 정보기관의 추정도 있다. 풀린처럼 이슬람으로 개종한 외국인은 물론 원래 무슬림 출신도 상당수다. 서구에서 이민자로 살다가 환멸을 느끼면서 극단주의에 빠진 무슬림 젊은이로 추정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IS는 SNS와 인터넷 채팅방을 이들을 끌어들이는 파이프라인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거둔 군사적 승리를 더욱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세련된 화술을 구사하며 관심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인도 일간지 트리뷴 인디아는 지난 17일 동남부 대도시 하이데라바드에 사는 살만 모히우딘이라는 청년이 사이버수사대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두바이와 터키를 거쳐 시리아에 입국해 IS 대원이 되려고 한 혐의다. 살만은 페이스북에 가명으로 여러 계정을 만들어 두고 IS에 관심 있는 사람과 접촉해 오다가 IS에 합류하려고 출국 준비를 하다 체포됐다. 주변에는 두바이에 일자리를 구하러 간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김군과 상황이 사뭇 비슷하다. 독특한 것은 그가 IS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다. 하이데라바드 경찰에 따르면 살만은 미국에서 일하다 2014년 10월 비자 연장이 거절되면서 귀국했는데 당시 만난 니키 조셉이라는 영국 국적의 무슬림 개종 여성으로부터 과격한 극단주의 사상을 접하고 IS 합류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시리아에서 군사훈련을 마치는 대로 귀국해 인도에서 반정부 활동을 할 생각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IS의 글로벌 모병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잔혹한 행동을 할 병력을 모집하는 수준을 넘어 테러가 출신 국가로 수출되는 통로 구실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IS로 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중반 시리아에 가 IS 대원으로 전투를 벌이다 터키로 탈출한 27세 청년의 사연을 최근 소개했다. 이스탄불의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서 마약에 절어 일자리도 희망도 없이 살던 칸(가명)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 10명과 함께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향했다. IS의 실질적인 수도인 시리아 동북부 라카의 훈련소에서 15일 훈련을 마친 그는 전투팀에 배치됐다. 두 명을 사살하고 공개처형에 참가했으며 한 남자를 생매장한 다음에야 비로소 “IS의 정규 전사가 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알라후 아크바르(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는 말을 외치면 피나 살점이 튀는 것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적을 죽일 수 있는 신성한 힘이 생긴다고 교육받았다”며 “그렇게 전투를 벌이다 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몽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카에 3개월간 머물던 그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탈출해 터키로 돌아왔다. “IS는 너무 잔혹해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IS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입맛대로 바꿔서 가르친다”며 “하나님은 무슬림에게 같은 무슬림을 죽이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IS에 가담한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IS의 병사 모집은 계속되고 있다. 터키 곳곳에서 “전투 수당으로 매일 150달러를 주는 것은 물론 집과 식사, 의복이 모두 무료”라며 가난한 청년들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S 병사로서 무기만 들고 있으면 아무 가게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도 된다”며 합류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터키 출신의 오즈구잔 고즐렌지오글룸이라는 인물은 3년 전 IS에 가담한 뒤 계속 진급해 최근에는 라카의 지역사령관에 올랐다. 그는 터키 수도 앙카라를 수시로 드나들며 새로운 지원자를 데리고 온다고 NYT가 최근 보도했다.

 황당한 경우도 있다. 23세의 인도 청년 아리브 마지드는 지난해 가을 IS에 합류해 6개월간 지냈지만 화장실 청소는 물론 교전 중인 최전방으로 물을 길어 나르는 등 혹사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탈출했다. 인도 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NIA)은 지하디스트(이슬람 전사)가 되고 싶어 IS에 합류했다가 탈출해 귀국한 청년을 심문한 결과 이 같은 사연을 확인했다고 지난달 1일 인도 일간지 타임스오브인디아가 보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IS는 인터넷상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대접하는 타락한 걸프 지역 국가와는 달리 자신들은 이슬람 형제애를 바탕으로 이들을 따뜻하게 대한다고 선전하며 합류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온 사람은 운이 좋은 경우다. IS는 지난 두 달 사이 지하드를 그만두고 귀국을 원한 외국 출신 대원 116명을 처형했다고 영국에 있는 인권단체 시리아 인권관측소가 최근 밝혔다. 이 인권단체는 116명이라는 수치는 집계된 숫자일 뿐 실제 귀국을 원하다 처형된 외국인 대원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IS의 글로벌 모병은 이렇듯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나서 IS의 인터넷 선전을 막는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를 차단해야 한다. 독일은 지난해 9월 IS에 합류하는 것은 물론 이 테러조직을 찬양·고무·홍보·지원하는 일을 불법화해 처벌하고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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