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못가게해도 화장실에간 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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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바른생활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느라고 판서(판서)에 열중하고있었다. 어린이들은 저마다 공책에 적느라고 아주 조용했다.
『선생님, 변소에 갈까요?』
갑자기 용이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바람에 조용했던 교실이 깜짝놀랐다.
『안돼!』
조용한 분위기를 깨는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단번에 거절했다.
『선생님, 소변 보고 올께요!』
용이가 다급하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안돼, 조금 있으면 쉬는 시간이 되니까 그때 변소에 다녀 와요.』
나는 뒤도 돌아다보지도 않고 판서를 계속했다.
한참뒤에 판서를 마치고 보니 용이가 자리에 없었다. 결국 변소에 간 모양이다.
난 슬그머니 화가 났다. 그 동안을 못참고 약삭빠르게 행동한 용이가 괘씸하기까지 했다.
얼마후에 용이가 들어왔다.
『너, 누가 변소에 가라고 했지? 네 맘대로 가도 되는거야!』
좀 격한 말로 나무라 주었더니,
『선생님,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정말 오줌 쌀뻔했어요. 여러 친구들 앞에서 오줌을 싸는 것보다 훨씬 좋을것같아서 변소에 다녀 왔어요.』
스스럼없이 야무지게 또박또박 변소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용이의 말에 나는 더 이상 꾸지람을 할수가 없었다.
용이는 정말 판단력이 있고 용기가 있는 어린이다. 여태 나는 개구장이인 용이를 무조건 꾸지람만 해왔던건 아닌가 반성이 간다.
우리 교사들은 자칫 잘못하면 기분대로 어린이를 나무라거나 사정도 모르고 거절할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하니 재작년에 4학년이나 된 선이가 오줌을 싼것도 수업시간에 허락을 안해줄것이 뻔해 참다가 나중에는 실수를 저지른게 아닌가.
비록 담임의 거절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어린이 스스로가 판단하여 행동한 용이 어린이는 이제 무조건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칭찬해줄만한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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