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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이라 더 울컥한 13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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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

21일 밤 노트북 앞에 앉았다. ‘13월의 울화통’을 취재하다 정작 내 연말정산이 늦어졌다. 즉석복권을 긁기 전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간 썼던 기사들을 곱씹어봤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뀐다. 연봉 7000만원 이상이면 세금이 꽤 늘어난다. 다자녀와 미혼자 부담이 커진다. 간이세액표를 바꿔 원천징수를 적게 해 환급액이 줄거나 토해내는 사람이 많아진다.’ 아직 ‘싱글’이라는 것만 빼면 그다지 손해 볼 건 없지 싶었다.

 회사 연말정산 자료 입력시스템을 열었다. 인적 공제 대상에 올릴 수 있는 가족은 어머니뿐. 연금 생활자가 된 아버지의 부양가족에서 내 부양가족으로 어머니가 옮겨온 지 2년째다. 연금저축과 청약저축 항목까지도 수월했다. 그런데 ‘그 밖의 소득공제(신용카드 등)’ 단계에서 딱 막혔다. 일반사용분과 전통시장·대중교통 사용분을 애써 입력했더니 2013년도 액수를 따로 적으라고 했다. ‘아, 그렇지.’ 올해 처음 적용되는 제도가 있다는 걸 깜박했다. 지난해 하반기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영수증 사용액이 2013년보다 증가하면 공제율을 좀 더 높여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계산해 입력해야 하는 거지?’ 먼저 연말정산을 끝낸 동료에게 물었다. “신용카드·직불카드·현금영수증 사용분은 자료가 두 장씩이고, 2014년은 각각 상·하반기가 따로 있고, 일반·전통시장·대중교통을 나눠 입력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친절하게 “국세청 사이트에서 뽑은 자료를 연말정산 입력 양식에 맞춰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도 설명해줬다. 고비를 넘긴 듯했다. 계산기에 나온 숫자를 항목별로 입력했고 허리를 죽 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양가족인 어머니의 카드 사용분이 남아 있었다. 똑같은 과정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1100만 명이 이용하는 제도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할까 싶었다. 황당한 건 2013년분을 반영하지 않고 모의정산했을 때와 차이가 없었다. 소비가 늘지 않아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는 “6000원 돌려받는다”는 푸념, “토해내지 않는 게 어디냐”는 타박, “담배 한 갑 값 돌려받자고 30분 이상 매달려야 하느냐”는 하소연이 빗발친다.

 그동안 ‘13월의 월급’은 자부심이었다. 돈 굴려서 갑부가 될 역량은 못 되더라도 남들 하는 것만 챙기면 ‘세(稅)테크’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일찌감치 청약저축·장기주택마련저축·연금저축과 비과세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기부금도 자동이체로 빠져 나간다. 세법이 바뀌면서 연금저축 한도도 늘려 넣었고, 신용카드 대신 직불카드 위주로 썼다.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서둘러 입력을 끝내고 두둑한 용돈을 확인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모의 정산 결과 환급액이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연봉인상분을 제외하고 씀씀이나 공제내역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추가로 내는 세금이 30만원가량 됐다. 표준세액공제가 줄고, 공제받을 가족이 없고, 교육비·의료비 지출도 적을 수밖에 없는 미혼자에겐 연말정산이 더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순간 울컥했다. 싱글로 살기 어려운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다. 씁쓸한 13월이다.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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