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목요일] 실패 이겨내는 아이로 키우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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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주부 정모(43·서울 서초구)씨는 아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한 적이 한 차례도 없다. 학원도 차로 데려다주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는 자신이 함께 갈 수 없으면 외할머니라도 동행케 했다. 학교 발표과제물 역시 아이 혼자 하는 일은 드물다. 정씨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거나 사진을 찍어 오려주고 아이는 소감을 적는 식이다. 그는 “아이가 3학년 때 학급회장 선거에 나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고학년이 된 뒤론 출마했다가 안 되면 상심할 것 같아 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는 이달 초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서초동 실직 가장 사건’을 접한 뒤 고민에 빠졌다. “처음엔 굶는 지경에 처한 가족의 얘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명문대 출신이고 집을 팔면 6억원가량 남는다는데 실직을 못 견디고 끔찍한 일을 저질렀더군요.” 그는 “그 가장의 어머니가 ‘아들이 고생하지 않고 자랐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사진=김성룡 기자

 어른이 됐을 때 작은 역경이라도 닥치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아이로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 이런 우려가 퍼지고 있다. 미국에서 대규모 헤지펀드를 설립한 아버지가 용돈을 줄이겠다고 하자 아이비리그를 나온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한국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을 되돌아보게 한다.

 두 자녀를 둔 김유정(42·여·서울 서초구)씨는 “공부보다 자립심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부족하게 키울 궁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정(39·여·서울 강남구)씨도 “여행을 다닐 때 편하려고 좋은 숙소를 잡는 편인데 아이들이 커서도 우리에게 기대를 할 것 같아 갑자기 불안해졌다”며 “홀로 섰을 때도 강해질 수 있게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전문가들은 자녀가 실패의 경험을 쌓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쉽게 좌절하는 자녀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하는데 부모가 사사건건 해결해주다 보면 실패에 대해 과도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가톨릭대 김영훈(소아청소년과 교수) 의정부 성모병원장은 “자라면서 경험을 통해 터득해야 자기주도성이 생기는데 부모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한답시고 방어막을 치다 보니 커서도 역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희진 유아교육과 교수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만들 수 있어 성공의 경험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경험하지 말아야 할 실패는 맛보게 하고 막상 겪어야 할 실패는 안 시킨다”고 지적했다. 수준에 맞지 않게 어려운 선행학습을 시키면서 불필요한 좌절을 안겨주는 반면 정작 일상에서 자신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는 막는다는 것이다. ‘넌 공부만 해, 나머지는 엄마가 알아서 해줄게’ 같은 태도는 금물이라는 얘기다.

 자녀가 역경을 헤쳐나갈 힘을 갖길 바라지만 일부러 어려움에 빠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개입을 줄이고 최대한 지켜보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원장은 “취직을 해도 부모와 살 때보다 더 잘살 것 같지 않으면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안 든다. 자녀에게 스스로 하도록 책임을 지우고 가정 형편이 좋아도 일부러 용돈을 적정하게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이들이 다툴 때 부모가 개입하지 말고 상처가 날 정도가 아니라면 둘이서 해결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식탁에 숟가락·젓가락을 자녀에게 놓게 하고 칭찬을 해줘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 친척 상가(喪家) 등에 데려가서 절망과 슬픔, 죽음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경제 교육도 5~6세 등 어렸을 때 시작해야 효과가 큰 만큼 넉넉하지 않은 용돈을 주고 계획해서 관리하게 한다.

 김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작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라고 권했다. 요구하는 장난감을 무조건 사주지 않기, 할 일을 안 하면 TV 시청 제한하기 등을 통해 자신을 제어하는 경험을 시키라는 것이다. 나이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도 좋다. 김 교수는 “유치원 갈 나이가 되면 혼자 씻게 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물건 사오기 등 심부름을 시켜보라”며 “미국이나 유럽에서 마당 치우기나 쓰레기 버리기 등을 아이에게 시키는 것도 독립심을 키워주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선생님에게 아이가 해도 되는 말을 부모가 대신 전하거나 토라진 친구와 화해할 때 엄마가 나서는 것도 한국 엄마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로 꼽힌다.

 학부모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엔 엄마들의 제안도 쏟아지고 있다. ‘친척 집이 부자인데도 아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자 고교 때부터 자립심을 길러준다고 아르바이트를 시키더군요. 지금 그 아들 잘 살고 있습니다’. ‘스무 살에 명문대 입학할 것을 바라보지 말고 서른 살에 독립하는 걸 목표로 자녀를 교육하란 얘기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보면 대학 시절 학비 외엔 부모가 지원해 주지 않은 직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더군요.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방학 때 인력시장에 나가 전 설거지하고 아이에겐 식당 신발 정리하라고 해보려고요’.

김성탁·김기환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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