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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3)-제79화 육사졸업생들(186) 장창국|9기생의 사회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군복을 벗은 9기생들은 정치인·공무원·국영기업이나 사기업의 간부 등으로 각계에 진출했다.
강상욱(56·준장예편) 유범수(56·중령예편)씨는 5·16을 계기로 정계에 진출해 강씨는 6·9대, 유씨는 7대 국희의원을 지냈다.
강씨는 6대에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뒤 지역구출마를 위해 서울면목동에 자리잡고 지역개발붐을 일으키며 개발을 닦았으나 67년 7대선거에서 장준하씨의 옥중출마로 고배를 마셨다. 69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돼 2년을 일하다 나와 8대국회에 재출마했으나 유옥우씨에게 또 패배, 「선거운이 없는 사람」으로 불렸다. 당시 여당이 전멸하다시피했던 서울지역에서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져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던 강씨의 패배는 공화당에도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강의원은 유신후 9대국회에서 야당의 송원영씨와 나란히 지역구당선의 소원을 풀었으나 선거부정시비로 당에서 제명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했다. 그후 복당은 했으나 10대때는 공천을 받지못하고 출마했다가 낙선해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전북 완주출신의 유범수씨는 5·16직후 예편, 군정에서 원호청전주지청장으로 갔다가 향군지부장을 거쳐 민정이양후 정읍·완주·고창군수를 지낸것을 인연으로 7대국회에 출마, 선량이 됐다. 이후 몇차례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평소 붓글씨에 취미가 있는 유씨는 선거구민들의 경조사를 비롯, 기회있는대로 글씨를 써주는것으로 선거운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
행정부로 진출한 9기생은 현직의 윤성민국방장관(57·대장) 천주원병무청장(55·중장)외에 김원희(54·준장) 안광석(60·대령)씨가 각각 조달청장을 역임했다. 김원희씨는 5·16후 서울사세청장을 시발로 재무장관 특별보좌관·재무부기조정관을 거쳐 예편, 재무부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다 조달청장이 됐다. 김씨는 조달청장에서 청와대총무수석비서로 옮겼다가 감사원감사위원을 역임했다. 안광석대령은 혁명후 조폐공사감독관으로 파견된 것을 시발로 대통령비서실 재무관으로 일하다 63년 예편해 청와대총무·민원비서관, 민원수석비서관을 거쳐 조달청장이 됐다.
영어를 잘해 부관병과로 뽑혀 갔던 김창범씨(54·소장)도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으로 한때 관계에서 일하다 실업계로 갔다.
민정이양전후 총경계급을 받아 경찰에 투신했던 김세균·박용부·박영호·고병선·정해근중령 등은 경찰서장으로 치안일선의 책임을 맡았었다.
그중 고병선씨는 경무관까지 승진했고 군의 통신전문가로 경찰통신혁신을 위해 경무관으로 특별임용됐던 유태성씨는 전남도경국장으로 옮겨갔다. 김치열장관때 50세이상 고령경무관 정리에 따라 물러났다.
주서독·주멕시코·주이란대사 등을 역임한 이창희대사(55·중령)와 주후꾸오까총영사를 거쳐 외교안보연구관을 지낸 황원형씨(59·중령)는 외교관으로 전신한 경우다.
이밖에 다수의 9기생들은 국영기업체와 사기업의 중역으로 활약했다.
해병의 이병문대장(53)은 아시아시멘트사장으로 일하다 현재는 회장으로 있으며 나동원소장이 아시아자동차사장으로 일하고있다.
김창범소장은 총리행조실장으로 있다 나와 국제화재해상보험사장으로 갔으며 현재는 음향기기제조사인 삼미기업사장에 있다.
정훈감출신의 노영서(56), 장근환(56)소장은 영화진흥공사 사장자리를 각각 물려받아 영화발전에 애썼다.
김연상중장(해병)은 동서화학사장을 지냈고 곽형배소장은 한양화학감사를 거쳐 전무로 일하다 퇴직했으며 곽응철소장이 광업진흥공사 총무이사, 김병윤소장이 한비전무, 홍대식준장이 한국유리부사장, 황일환준장이 삼익건설부사장을 지냈다.
행정부로 갔던 김원희준장은 감사위원을 그만둔뒤 현재는 조선공업협회 회장을 맡고있으며 김인화준장이 방위산업협회 부회장을 맡고있다.
혁명주체 9기가운데 반혁명으로 구속됐던 김제민중령은 조폐공사이사로 들어가 여러해 일하다 80년 퇴직했으며 김수중소장은 유공이사로 몇해 있었다.
최명헌대렁은 구로공단이사장으로 71년부터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11대국회에 민정당전국구 국회의원이 돼 현재 유일한 9기출신 선량이다.
해병의 이동호소장이 금오공고교장을 거쳐 금오공대학장으로 재직중이며 박승옥소장이 춘천제일고등학교 교장으로 여러해 봉직하다 퇴직했다.
일찍부터 문필로 동기들 사이에 알려진 유근주중령은 경향신문 주일특파원을 지낸뒤 현재 작가로 활동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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