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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오케스트라 드림팀 … 화음으로 역사 갈등 녹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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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휘자 세이타로 이시카와

브람스는 54세에 자신의 균형감각을 시험해봤다. 그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작품이 된 이중 협주곡(1887년)에서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첼로 독주자가 협연하는 형식이다. 브람스는 바이올린·첼로 중 어느 쪽에도 일방적 주도권을 주지 않는다. 둘은 똑같은 비중으로 등장한다.

 류재준(45·작곡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이런 ‘균형감각’에 주목했다. 그리고 바이올린·첼로를 각각 한국·일본 연주자에게 맡겼다. 오는 31일 서울국제음악제의 폐막 공연인 ‘한·일 연합 오케스트라 하모니 콘서트’에서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첼리스트 레이 츠지모토가 협연하고 신예인 세이타로 이시카와가 지휘한다. 류 감독은 “이 작품은 브람스가 오케스트라 작곡의 경지에 올랐을 때 나온 것이다. 이만한 균형감을 보여주는 작품이 없다. 한·일 문제에서 서로의 입장을 대등하게 보라는 메시지를 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일 연합 오케스트라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단원은 총 80명. 한국 64명, 일본 18명이 모였다. 현악기는 모두 한국인, 관악기는 일본인이 나눠 맡았다. 단원 면면도 수준급이다. 한국에서는 수원시향, 부천필, 서울바로크합주단, 그리고 일본의 NHK 심포니, 도쿄필,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등에서 활동 중인 연주자들이다. 류 감독은 “양국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공식으로 연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左), 첼리스트 레이 츠지모토(右)

 한·일 외교는 복잡하다. 일본군 위안부·독도·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이 얽혀있다. 그러나 음악인들은 간단히 모였다.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서울국제음악제 총감독)씨는 “연주자들을 모으는 일이 의외로 수월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메이저급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제안했을 때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일본인 연주자는 자신의 오케스트라 공연 출연을 포기하면서 서울에 온다.

 양국 음악인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첼리스트 박경옥씨는 “양국의 연주자들이 서로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연결하는 식으로 네트워크를 동원했다. 연락을 해보니까 일본 연주자들과 손쉽게 닿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번이 첫 연합이라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한 번의 음악회가 과연 외교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류 감독은 이에 대해 “음악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목적으로 만나고 메시지 담은 음악을 연주하면 음악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뿐 아니라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교향곡 등 한·일 관계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선곡한 이유다. 공연은 3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서울국제음악제=한국국제교류재단이 2009년 시작한 음악제.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7회째인 올해 음악제는 ‘조화와 혁신’을 주제로 서울 예술의전당, 일산 고양아람누리,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8회 공연한다. 한·일 연합 오케스트라 콘서트 이외에도 슈베르트 교향곡 7번 수정판의 한국 초연 등이 계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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