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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YWCA 위장 결혼식'서 신랑 역할 홍성엽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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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75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던 홍성엽씨가 책을 한아름안고 서울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중앙포토]

1979년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되는'YWCA 위장 결혼식'사건의 주역인 홍성엽(사진)씨가 5일 오전 백혈병으로 별세했다. 53세.

'YWCA 위장 결혼식'은 1979년 11월 24일 유신 독재 반대 투쟁을 벌이던 재야 세력이 박정희 정권 붕괴 이후 처음 여는 집회였다. 정치인.종교인.학생 등 민주화 세력이 모여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국의 허가 없이는 집회를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묘안을 짜내 집회를 결혼식으로 위장한 것이다.

그날 5시30분, 서울 명동성당 앞 YWCA 1층 강당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홍씨(당시 연세대 사학과 재학)가 신랑 역을 맡았다. 당시 나이로 27세였다. 신부는 윤정민이라는 가상 인물, 주례는 함석헌 선생이 맡았다.

이 계획에는 국민연합 공동의장이었던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선생,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일 그의 빈소에 모인 조문객들은 26년 전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삼 떠올렸다. 빈소에는 당시 위장 결혼식의 하객이었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해찬 국무총리,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부영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등 민주화 인사 100여 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연세대 선배인 김학민(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사무처장)씨는 "가상의 신부였던 정민이라는 여자는 우리의 염원이던 '민정(民政)'을 뒤집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씨는 "꽃미남에 민주화 투쟁 의지가 강했던 홍씨가 신랑을 자임했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당시 실제로 혼례를 치르는 것처럼 친지들에게 청첩장을 돌렸다. 홍씨의 어머니 심혜수씨(90년 사망)는 아들의 뜻을 받아들여 결혼식에 참석했다. 홍씨는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에 참가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연행됐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이 사건을 '유신 체제 붕괴를 틈타 집권을 꿈꾼 탐욕적인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참가자 중 홍씨를 포함한 14명을 구속해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홍씨는 이에 앞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어 두 번째 옥고를 치르는 것이었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홍씨와 함께 감옥 생활을 했던 이해찬 총리는 "말 없이 궂은 일만 도맡았던 사람이 투병 사실도 얘기하지 않고 조용히 가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조문객들은 고인의 빈소에 상주가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홍씨는 위장 결혼식 사건 이후 독신으로 살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해왔다. 그는 옥고를 치른 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에서 잠시 몸을 담기는 했지만 그 이후 활동은 활발한 편이 아니었다. 홍씨의 친형인 재엽(56)씨는 "동생은 고지식한 사람이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고 전했다.

97년 백혈병 판정을 받았지만 주변에 알리지 않아 최근에야 알려졌다. 위장 결혼식에 관여했던 양관수 고려대 객원교수는 "당시 사건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외롭게 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홍씨의 여동생 성재(50)씨는 "오빠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례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민청학련동지회.민청년동지회.연세대민주동문회와 6월 민주항쟁 계승사업회가 주관해 민주사회장으로 치른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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