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야권 리더십 결정 무대가 집안 싸움으로 전락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0호 05면

17일 공주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대표에 출마한 문재인·이인영·박지원 후보(왼쪽부터)가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낮은 당 지지도와 좀처럼 뜨지 않는 흥행으로 고민이 거듭되고 있다.

새정치련 당대표 후보 본격 유세전 … 당 안팎 온도차

10, 11일 제주와 부산·울산·경남에 이어 17일 충남(세종시 포함)과 대전에서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대표와 5명의 최고위원은 다음달 8일 전당대회에서 결정된다.

이날 연설회에서 당 대표에 나선 문재인 후보는 대세론을 앞세웠다. “국민이 누구를 우리 당의 얼굴로 원하고 있느냐”며 자신을 지지하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문 후보에 대한 박지원 후보의 공격은 맹렬했다. “특정 세력(친노)이 당 요직과 운영을 독점한다면 나머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문 후보가 꿩(당 대표)도 먹고 알(대선 후보)도 먹으려 하면 ‘안희정 대망론’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충남 표를 겨냥해 이 지역의 희망으로 떠오른 안 지사까지 문재인 공격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인영 후보는 “우리 안에 분열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친노·비노에다 지역 할거까지 되살아나고 있다”며 “보다 분명한 혁신의 메시지는 없다”고 문·박 양 후보를 공격했다.

이번 당 대표 선거전은 흥행 카드론 구색을 갖췄다는 평가다. 새정치연합의 대주주 격인 호남(박지원)과 친노(문재인), 김근태계·486(이인영) 좌장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한길 대표 등 비노 인사 중심으로 지도부가 선출됐던 2013년 5월 전당대회(당시 민주당)와는 사뭇 딴판이다.

하지만 장외 민심은 새정치연합의 본바닥 격인 전남에서조차 싸늘했다. 14일 전남 서부지역 합동간담회가 열린 목포 전남여성플라자에서 만난 한 70대 당원은 “사실 이곳 당원들의 관심사는 당 대표·최고위원보다 함께 치르는 도당위원장 경선에 쏠려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 도중 도당 회계 운영 문제로 도당위원장 후보들과 청중 간에 고성이 오갈 정도로 민감했다.

공교롭게 다른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모두 참석한 이 자리에 문 후보만 빠졌다. 그러자 간담회장 곳곳에서 “이제 호남과는 소통도 않으려는 것이냐” “호남 지지 없이도 승리한다는 계산이 나온 모양”이라는 등의 서운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공격이 이어지자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전남도당에서 행사 취소 공문을 보내와 다른 일정을 잡았는데 뒤늦게 와서 행사를 다시 연다고 결정했다”며 “문 후보가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정황”이라고 반박했다.

행사장 밖 목포시민들의 반응도 냉소와 분노 일색이었다. 택시기사 송영철(55)씨는 “선거 때마다 표와 정을 줘도 밥그릇 싸움만 한다. 눈 딱 감고 밀어 주고 싶어도 이젠 그럴 명분도 없다”고 탄식했다. 시내 신청호시장에서 채소 유통을 하는 김금단(48)씨는 새정치연합 얘기를 묻자 “어메. 답답혀”라며 “지네들끼리 싸움박질만 하고 신뢰를 받으려는 시늉도 않는다. 들리는 야당 민심이 뒤숭숭하다”고 했다. 생선가게를 하는 한 70대 상인은 생선을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정권을 헐뜯을 줄만 알지 서민정책을 연구해 내놓을 줄을 모른다. 여당·정부보다 야당이 더 밉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야당의 당권 경선이 시작됐지만 한 주 동안 국민의 눈과 귀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에서 빚어진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음종환 전 청와대 행정관 간의 논란에 더 쏠렸다. 게다가 정동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의 탈당 선언과 또 다른 당내 중진인 천정배 전 의원의 동반 탈당설까지 터져 나와 당내를 더욱 어수선하게 했다. 정 전 고문이 합류키로 한 신당 창당 추진 ‘국민모임’의 김세균 공동대표는 “새정치연합의 변화는 이제 내부적으론 불가능하고 외부 충격에 의해서만 혁신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새정치연합과 각을 세웠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새정치연합 대표 경선이 이제 더 이상 한국 야권의 리더십을 결정하는 장이 아니라 집안 싸움의 위상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국민 선호는 문재인, 당심은 박지원 우세
이처럼 국민의 관심이 좀처럼 몰리지 않자 가장 긴장하는 쪽은 문재인 캠프다. 선거인단 중 일반당원과 국민 여론조사에서 박·이 후보를 월등히 앞서는 만큼 당 밖의 무관심은 지지 원동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16일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51%의 지지를 얻어 박지원(10%)·이인영(8%)과 큰 격차를 보였다. 문 캠프 내에서는 지지자들이 ‘대세론’을 믿고 투표장에 아예 안 나올 수 있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박지원 후보 측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의 10일 조사에서 대의원(43.3 대 37.5), 권리당원(47.7 대 35.5) 모두 박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섰다며 현재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당 대표·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대의원(45%) 투표 외에 권리당원(30%), 국민과 일반당원 여론조사(25%)가 반영된다.

당내 중진들 사이에 친노(문재인) 견제 움직임이 일면서 이인영 후보 쪽으로 힘을 더하는 형국도 나오고 있다. 정세균 의원이 7일 컷오프(예비경선)에서 자신의 당내 지분을 이 후보에게 넘겨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13일 이 후보와 직접 만나 “이인영 의원이 2011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나를 서울시장에 당선시켰다. 이 후보의 정책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고 힘을 실어 줬다.

박상헌 공간과미디어 소장은 “안철수 세력이 이 의원에게 가세한다면 문 의원으로선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최고위원 캠프 관계자는 “뚜껑을 열어 보니 문재인 쪽이 예상 외로 고전하고 있다. 독주가 아닌 2파전·3파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속사정을 전했다.

“계파가 다르면 밥도 따로 먹을 정도”
새정치연합의 뿌리인 민주당부터 쳐보면 ‘민주당 계열’ 야당의 역사는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권력을 연장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맞서 1955년 9월 19일 신익희·조병옥·장면·곽상훈·정일형 등의 주도로 민주당을 창당한 것이 그 시초다. 하지만 그 전통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는 새정치연합은 수권 능력도, 대안 제시 능력도 상실한 ‘불임 정당’이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계파가 다르면 행사도 따로 하고 밥도 따로 먹는 게 요즘 분위기”라고 당내 관계자는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촉발된 당내 김대중-노무현 세력 간 갈등에다 실용파와 개혁파 간 노선 투쟁을 벌였던 이른바 ‘난닝구(실용파)-빽바지(개혁파) 논쟁’ 등으로 빚어진 앙금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새정치연합은 수권 정당은 고사하고 국민에게 야당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당으로 인정받는 것에서 혁신이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원인으로 친노 계파의 패권적인 행태를 지적하며 “운동권적 시각을 가진 소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침묵하는 다수의 이성적 목소리들이 당내에서 유통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평론가는 “정동영의 탈당이 야권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이번 경선과 4·29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분당을 비롯한 이합집산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비판들이 잇따르자 문 후보는 서둘러 “당선되면 친노에 불이익을 줄 정도로 당직 탕평인사와 시스템 공천을 실시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놨지만 향후 선거전에 미칠 영향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전·공주·목포=이충형 기자, 송기승 인턴기자 adch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