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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들 작품『시각』이 넓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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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몇몇 여류문인들의 작품이 감성적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나 존재론적 깊이에 이르고 개인보다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연대의식에 투철해지고있다.
여류들의 시각의 확대라고 할 수 있는 이같은 현상은 젊은 여류들에게 특히 두드러지며 차츰 여류전체에 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류문인들이 모성의 정서, 감상,「님」에 대한 이미지, 가정생활 등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변화가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체험의 장을 가지도록 변하고있기 때문이다. 교육이나 사회생활 등이 종래와 같은 남녀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의석도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
종래의 기준에서 볼 때 탈여류의 문학작품을 내놓는 여류문인으로 꼽을 수 있는 작가는 시의 김윤희·강은교·권지숙·김옥영·고정희·최승자·김경옥·국효문씨 등과 소설의 오정희·강석경·최명희·윤정모·양귀자씨 등이다.
이러한 여류들은 물론 선배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소설에서는『토지』의 박경리씨, 『엄마의 말뚝』의 박완서씨와 시에서『에덴 그이후』를 낸 홍윤숙씨 등을 들 수 있다.
여류시인들의 시에서는 민중의 아픔, 현대문명의 피폐, 시대 상황의 문제 극복과 비전 등이 다양하게 추구되고 있다.
강은교씨는『빈자일기』를 내놓으면서 그의 문학의 완전한 변모를 보였다.
개인보다는 민중에 돌려진 시선을 찾아낼 수 있다. 또『우리가 무리되어 만난다면』같은 시는 불교적 윤회시로 보기보다는 존재론적 만남의 연가로 특출하다.
국효문씨의『기에』같은 작품은 살벌한 공사장을 테마로 하여 정서화에 성공하고있다.
김옥영씨의『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는 동시대인의 아픔을 보여준다.
고정희씨는『신연가』『우리들의 순장』『사람 돌아오는 난장판』등을 쓰면서 시대인식과 상황인식이 없을 때 개인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보여주면서 어두움을 극복하고 꿈을 가지도록 하는 비전을 제시하려 한다.
고씨는 판소리 탈마당의 형식을 시에 도입하여 장단·서사성·희곡성 등을 보이는 특이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승자씨의『197×년 우리들의 사랑』은 물량위주·형식위주로 살아가는 삶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소설에서는 역사의식과 자료에 중심한 작업 등이 눈에 뛴다. 이정호씨의『감비전물붙이』. 윤정모씨의『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최명희의『횃불』등을 들 수 있다. 최씨의『횃불』은 조선조 여인의 삶을 치밀하게 썼고 윤씨는 일제시대 여성의 수난사를 처절하게 기록했다.
박완서씨의『엄마의 말뚝』, 오정희씨의『유년의 뜰』등에서 6·25의 수용이 다루어졌다. 강석경씨의『청색지붕』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포착했다. 양귀자씨의『들풀』은 쫓기는 사람의 모습에서 사회성이 감추어져있다. <임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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