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한국과 싱가포르의 차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은퇴한 리콴유는 아직도 싱가포르의 최고 실력자다. 후선에 물러났으나 정부투자공사(GIC)의 이사장 자리를 맡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외환보유액으로 해외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 회장 자리에 앉았으니 말년 인생을 비즈니스맨으로 전업한 셈이다.

아들 리셴룽 총리도 아버지의 경제 지상주의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지난 8월의 40주년 건국기념일 연설 내용을 보면 아버지를 능가할 정도로 경제 이야기 일색이다. 몇 군데를 인용, 소개한다.

"오늘도 경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먹여살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이때도 장관들이 날더러 제발 경제 이야기 그만하고 연설 주제를 딴 걸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렸었다. 그러나 이번 역시 경제 이야기를 거듭해야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 문제가 풀려야 다른 문제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연설 내내 기술혁신, 기업경쟁력, R&D 투자, 교육, 노령화 대책과 신산업 창출 등 온통 경제 이야기로 일관한다. 저비용 고효율로 지금까지는 먹고살았지만 이젠 어림도 없다고 경고한다. 국민 모두가 마음 자세와 사고방식까지도 확 바꿔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삼성과 소니의 이야기도 나온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팬시한 새 디자인을 개발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한 한국의 삼성을 본받아야지, 박리다매식 낡은 전략을 폈던 일본의 소니를 닮아선 안 된다고 했다.

연설문 전체에 흐르는 중요한 맥락은 싱가포르의 국가 경쟁력 강화였다. 그것도 미사여구를 동원한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절실한 문제로 접근하면서 싱가포르 정부와 싱가포르 국민이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적시했다.

이런 싱가포르를 보면 새삼 한국 경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성장률이 8%를 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 수준인데도 자나깨나 경제 걱정인데 비해 우리는 3~4%의 잠재성장률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물론 싱가포르처럼 조그만 나라에 한국을 수평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나라의 크기를 떠나, 더 잘사는 나라가 더 못사는 나라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고, 국제화로 치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 대해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걱정하는 것이다. 토요일에 한국의 은행들은 노는데 싱가포르의 은행들은 문을 열고 있고, 영어는 훨씬 잘하는데도 임금은 더 싸고, 외국인들의 주거비 월세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현실을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말이다. 이럼에도 "한국 경제 이상 없음" 소리가 나오니.

한국과 싱가포르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와 정부에 있다. 묘하게도 21세기 들어서 양국은 더더욱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제 우선주의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이 앞장서 종래의 기조를 와장창 바꿔가고 있다. 경제 우선주의는 "과거의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참여정부 리더들의 공통된 현실인식이다. 경제보다는 역시 정치사회적 배려가 우선이다. 이를 경제로 다시 돌이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장담하건대 실업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요, 따라서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경제가 안 되면 모든 게 안 된다는 것을 당해봐야 깨달을 것이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