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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은행자율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 은행사람들은 사뭇 감상적이 되기 일쑤다.
신문에 보도된 조그마한 창구사고에서부터 지난해 이·장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크고 작은 금융사고들이, 저금리체제하에서 잘 들어와 주지 않는 예금 고에서부터 지난해 각 은행별 수지상태에 이르기까지의 내부사정들이 모두 다 은행사람들의 한숨과 자조를 끌어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60년대와 70년대 초 대학의 문을 나서 선망의 시선을 한데 받으며 은행원으로 「선택」된 후 이제「별」의 자리에 오른 은행 임원들은 물론 신입행원들 가운데서도 우리 나라의 금융산업을 걸머지고 나간다는 긍지와 패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같은 상태의 은행사람들에게 심기일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올해를 원년으로 삼아 기회 있을 때마다 거론되고 강조되는 은행 민영화, 은행자율화다.
자율화·민영화가 되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5개 시은은 약속이나 한 듯 금년 봉급인상률을 일률적으로 6%로 묶음으로써 은행자율화는 한낱 말뿐인 자율화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근로자들은 누가 뭐래도 봉급이 큰 관심사다.
직업의식이나 보람도 중요하지만 자기 직장에 충실히 근무하기만 하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생활보장이 기본요건이다.
특히 은행과 같이 돈을 만지는 직업은 더욱 그렇다.
한데 이번에 인상된 은행원들의 봉급수준을 보면 과연 이들이 자신들의 직장에 충실하고 싶은 생각이 날까하는 의문이 든다.
입행후 2O년이 넘어야 될 수 있는 부장의 기본급이 월53만원 수준이고 고졸여행원의 초임은 고작 월10만4천원이다. 그나마 행장을 비롯한 은행임원들의 봉급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됐다.
저임금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단 은행원들 뿐이 아니지만 누가 보아도 은행원들의 봉급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준임에 틀림없다.
옛날과 같이 정부기업이면 몰라도 민간기업이 된 마당에 다른 곳과 너무 균형이 맞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요즘의 은행사람들 처럼 저임금·저금리·저 배당의 3저 시대를 실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다.
여기에 덧 붙여 각 시은의 봉급 6% 일률인상으로 요즘의 은행자율화가 과연 어떠한 자율화인지를 은행사람들은 또 한번 실감했을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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