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재잘거리면서 작년 이맘 때 5월의 신부이던 딸이 곁을 떠난 지 넉 달되던 어느 날. 간밤에 TV속의 어느 배우를 찬사한 연유로 옥신각신하다가 밤새 화해하지 못하고 새벽에 달려와서 『엄마』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 대신 남편이 고함을 질러 딸의 눈물을 멈추게 했다.
언제나 온화하고 오로지 딸 편이던 남편으로부터 당장 되돌려 보내도록 하라는 뜻밖의 불호령에 떠밀려 눈물이 다 마르지 않은 딸을 데리고 대문을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고, 서늘한 가을 새벽의 골목을 나란히 걸으면서 나는 미처 못 일러 보낸 말을 조금은 늦게 들려주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는데 가장·필요한 것이 흔히들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랑만큼 또 필요한 것이 양보란다. 너무 양보해 버려도 안되지만 가벼운 양보는 가정을 평화스럽게 해주는 거다. 남자는 원래 조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서 여자가 조금 여유를 가지고 슬쩍 져주는 체하면 남자는 편안해하거든.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내의 지혜란다.』
첫 부부싸움한 딸애를 다독거려 보내던 그 때의 마음은 정말 새벽녘가을바람 만큼이나 서늘했었다.
그로부터 벌써 일곱 달이 흘렀다.
날마다 줄자로 허리를 체크한다는 딸의 몸 속에 어느 덧 딸의 분신이 자라고 있는 요즈음.
『엄마, 아기 낳을 때 몹시 아프다지?』
『그래, 내가 널 낳았을 때 몹시 애먹었던 것 같구나.』
『엄마, 내가 엄마 배를 이만큼 부르게 해 가지고 엄마 몹시 고생시키고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오늘 처음 안 것 같아.』
『그래, 나는 널 남고 난 뒤 네 외할머니 고통 주고 태어났다는 것 알았는데 너는 이 엄마보다 조금 빠르게 알았구나.』
딸네 부엌에서 무우 깍두기를 담아 넣어주던 나는 딸 시집 보내고 처음으로 대견해 보여 빙그레 한번 웃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