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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석달] GP 총기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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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30일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GOP대대 병사들이 '고가소초'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감시소초(GP) 총기사건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GP 벙커를 지켜야 합니다."

일병이 수류탄과 총으로 소대장과 동료 등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발생한 중부지역 최전방 530GP. 육지 속의 섬인 듯 가을비 속에 우뚝 솟아 있다. 6월 19일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이 지난 30일 530GP를 찾았다. 고성처럼 보이는 GP는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벙커 위에는 가건물이 세워져 새로 배치된 소초원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태풍사단 독수리연대 1대대장 배상주(3사 20기) 중령은 "사고가 발생한 GP지만 한순간도 경계에 소홀할 수 없어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의 상처는 깊다. 범행을 저지른 김동민 일병은 한 달 일정으로 정신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있다.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영창에 수감된 상태에서다. 군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생존한 소대원 15명은 7월 26일 다른 부대로 배치됐다. 경위 조사 끝에 근무일지를 허위 기재한 혐의 등으로 2명은 구속됐다. 2명은 전역했다. 나머지 인원 중 7명이 정상근무 중인데 이 중 2명은 불안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사단 의무실에 입원해 주 1~2회 대전병원으로 통원치료를 하면서 정밀검사를 받고 있다. 생존 소대원들과의 인터뷰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심리적 충격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날로 사건 발생 103일째. 아직도 생존 병사들 가운데 여러 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목격한 동료 병사의 시신이 꿈에 나타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공포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사고 수습책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대의 병사 관리를 담당하는 행정보급관 안종규(40) 상사는 "사고 당시에는 부모들에게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10배나 늘어나는 등 다른 소대에까지 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같은 대대의 철책 소초에 근무하는 장동철(23) 병장은 "사건 발생 때 크게 놀랐다"면서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소대원들은 더 사이가 좋아졌다"고 했다. 장 병장은 "선임병이 자신의 일을 후임병에게 떠넘기지 않는 질서가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태풍사단 정훈참모 이숙자 중령은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한 다양한 개선책들을 설명했다. 한 예가 '나는 오늘도 규정을 잘 지키고 절대로 구타와 가혹행위, 욕설을 안 하고 상대방 인격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장병 일일신조를 매일 외우게 하는 조치다.

평소 선임병이 후임병을 불러내 구타하거나 얼차려를 실시하는 장소로 꼽히는 화장실과 식당 등을 '태풍존'으로 설정해 집중 관리하는 제도는 실효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육군은 "이젠 화장실이나 식당 등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됐다"고 말한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없는 안전지대는 올해 초 육군 26사단에서 '그린존'이란 이름으로 지정하기 시작했으며 GP 총기사건을 계기로 육군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서부전선의 전진부대는 '나이스 1사단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부대는 '칭찬 마일리지 제도'도 만들었다. 남을 많이 칭찬하는 병사들을 골라 매달 포상하는 제도다. 이 중령은 "시행 결과 병사들이 확실히 밝아지고 자기 표현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7월 22일 병영문화개선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대책위는 그간 실태를 조사하고 여론을 수렴했다. 장병 상호 간에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분위기 조성이 목표다.

개선 대책의 초점은 내무반 문화 개선에 맞춰지고 있다. "'내무반=구타와 얼차려'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를 자율성이 보장되는 생활공간으로 개선하겠다"는 다짐이다. 가장 먼저 취해지고 있는 조치는 내무반을 분대 단위로 구분하고 마루형을 침대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무반원들이 형제처럼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군에 들어올 수 없도록 인성검사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육.해.공군 안전센터에서 사고징후를 통계로 평가한 뒤 단계별로 조치를 취하게 하는 프로그램도 가동된다. 군 복무를 '썩고 있다'고 여겨 불만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08년까지 10명당 PC 1대씩을 배정, 취업 준비와 어학공부 등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른바 e-러닝 프로그램이다.

연천=김민석 군사전문기자<kimseok@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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