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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나라살림] 하. 방만한 정부 씀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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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후손에게 빚더미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선 지금 세대가 세금을 더 내든가, 나라살림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세수 부족은 심한데 정부의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

심지어 수십 조원을 쏟아부어야 할 국방개혁이나 대북 에너지 지원사업은 정부가 2009년까지 설정한 중기 재정계획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 사업이 추진되면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초대형 국책사업은 우선 순위를 정해 시급하지 않은 것은 뒤로 미루고,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 정부 씀씀이에서 군살을 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꼬리 문 초대형 사업=최근 발표된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국방개혁 분야다. 2020년까지 289조원을 투입해 전력증강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기획예산처는 2005~2009년 중기 재정 계획을 통해 5년간 국방 예산을 연평균 9.8%씩 늘려간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국방부는 최소한 2015년까지 매년 11%씩 늘려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건설에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행정도시 특별법에 따라 정부 예산으로 쓸 수 있는 돈은 8조5000억원으로 제한됐지만 실제 사업이 시작되면 추가 비용 부담은 불을 보듯 뻔하다.

농업.농촌 중장기투융자계획에도 2013년까지 109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한에 지원해야 할 돈도 만만치 않다. 통일부는 대북 에너지 지원 비용이 앞으로 9~13년간 6조5000억~11조원이 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중기 재정계획에도 반영돼 있지 않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북한 지원을 위해 써야 할 돈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 복지비 부담도 가중=무기는 한번 도입하면 그만이지만, 복지는 일단 제도를 도입하면 매년 지출액이 더 늘어난다.

정부가 내년부터 2009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22개 사회안전망 대책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안전망은 만들면 매년 대상자를 늘려가야 한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8조6000억원이지만 내년 예산에 반영된 1조4000억원, 중기재정계획에 반영된 3조6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3조6000억원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 부동산 관련 세금, 세출 예산 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2007년 도입을 추진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도 변수다. EITC는 저소득층이 일해서 돈을 벌면 정부가 현금으로 매달 일정한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재정경제부 추산에 따르면 지원 대상을 근로계층으로만 좁혀도 연간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이 필요하고, 지원 대상이 늘어나면 연간 4조원 이상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어나고 있는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적자도 고스란히 정부 부담이 된다. 연금에 적자가 생기면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하기 때문이다. 예산처는 이들 3대 연금에서 2020년까지 120조원의 누적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은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많은 국민연금도 점차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2037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2047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속한 연금 개혁이 실시되지 않으면 재정에는 심각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 씀씀이 과감히 줄여야=예산처는 "국방개혁의 경우 국방부 자체의 시안일 뿐 행정도시 건설이나 농촌지원은 중기 계획에 반영돼 있다"며 "예산이 여러 해에 걸쳐 나눠 집행되는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산처도 대북 지원이나 저출산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등에 대해선 별도의 재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성균관대 안종범(경제학) 교수는 "나라 살림이 어려운데 신규 사업을 마구 벌이면 재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며 "씀씀이부터 줄여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복지 예산 확충은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양대 나성린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현실성이 없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국책 사업은 보류하고 복지 분야 지출은 좀 더 신중하게 집행돼야 한다"며 "빈곤층에 직접 지원하기보다 일자리를 늘려 이들이 자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김원배 기자

국가재정계획 적정한가
빗나간 지표, 덜 걷힌 세수
'선언'그친 5년 나라살림

지난해 9월 기획예산처는 2004~2008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을 발표했다.

처음으로 5년 단위 나라살림의 청사진을 만들어 국가재정 수입을 전망하고 지출 규모와 재원 배분의 큰 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중장기 나라살림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꾸리겠다는 바람직한 취지였다.

이 계획은 매년 경제 상황과 여건 등을 고려해 수정하게 된다. 때문에 5년간의 중기 계획이 꼭 들어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계획이 초기부터 크게 어긋나면 중기 재정계획을 세워 나라살림을 짜임새 있게 운용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제대로 달성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5년 계획기간 중 나라살림은 건실하게 운영된다'는 애초의 발표를 시행 초반부터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5년간 실질 경제성장률이 매년 5%는 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계획을 짰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4.6%에 그쳤고 올해는 3.8%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처음부터 거시경제 지표가 예상치를 벗어나면서 세수에 구멍이 커졌다. 더구나 돈 들어갈 곳은 당초 예상보다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9월에 발표된 2004~2008년 계획에 따르면 관리대상수지(사회보장성 기금과 공적자금 손실의 국채전환분을 제외한 수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1%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됐다. 이어 2006년 0.6% 적자, 2007년 0.3% 적자를 거쳐 2008년에는 균형(0%)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해 세금이 계획보다 4조3000억원 덜 걷혔고, 올해도 4조6000억원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정부의 돈 씀씀이는 줄지 않아 나라살림 적자는 더 커졌다.

27일 발표한 2005~2006년 계획에 따르면 올해 관리대상수지의 GDP 대비 비율은 -1.5%로 지난해 계획보다 적자폭이 0.5%포인트 늘었다. 애초 균형을 회복한다던 2008년에도 여전히 1%의 적자가 나는 것으로 수정됐다.

적자가 커지면서 나랏빚도 늘어났다. 지난해 발표 때에는 올해 나랏빚이 244조2000억원으로 예상됐지만 올해 발표 때에는 3조9000억원 늘어난 248조1000억원이 됐다. 정부가 너무 낙관적인 경제전망을 바탕으로 장밋빛 중기 재정계획을 짰다는 비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김종윤 기자

각 부처, 지출 구조조정 사례
산림청, 비용 줄여 1000억 절감
나랏돈 아껴보려 정부 '안간힘'

나랏돈의 씀씀이를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하기 위해 돈 씀씀이를 아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정부는 올해 공무원 인건비나 이자 등 경직성 비용을 제외한 예산 42조7000억원 중 5.6%인 2조4000억원의 예산을 아꼈다.

내년 예산에도 상당한 구조조정을 했다. 기획예산처는 애초에 각 부처가 요구한 44조8000억원의 예산 중 9.3%(4조2000억원) 를 조정해 예산을 아끼거나 다른 필요한 예산의 재원으로 돌렸다.

노동부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기업에 채용 인원 1명당 최대 6개월간 월 60만원씩 지원하는 취업지원제도와 기업이 정규직을 채용하면 기업에 채용인원 당 월 60만원씩 최대 1년간 지원하는 청년고용촉진장려금 제도를 각각 운영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비슷한 성격의 두 제도를 통합해 23억원의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산림청은 숲 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비용을 줄여 예산을 아끼는데 기여했다. 올해 ha(약 3000평)당 129만원인 숲 가꾸는 비용을 내년에는 ha당 77만원으로 줄이는 등 총 10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산림청은 숲을 조성하는 사업을 기계화해 단가를 낮춘데다 임야 수용시 소유주 등을 설득해 수용 비용을 줄여 산림사업 단가를 평균 19% 낮췄다.

정통부는 농어촌 정보화를 위해 운영했던 지역정보접근센터에 대한 지원을 내년부터 폐지, 18억원의 예산을 아꼈다.

해양부의 어촌정보사랑방, 농림부의 디지털 사랑방 등의 사업과 중복됐기 때문이다.

정책의 효과가 떨어지는 제도를 과감히 없애 예산을 절감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이 꾸리는 중소기업 기술지도 사업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에 관련 전문가를 파견해 기술지도를 하는 이 사업에 대한 수요자 만족조사 결과 효과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정부는 내년에 이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여기에 들어갈 예정이던 30억원의 예산은 중소기업 경영쿠폰 컨설팅 제도의 예산으로 활용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예산 심의와 관리를 더 철저히 해 잘못 쓰이거나 새는 예산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등 나랏돈을 알뜰하게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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