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총장의 혁명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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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참모총장실을 나와 내방으로 들어서니 부관이 이한림1군사령관과 최경록2군사령관한테서 전화가 여러차례 왔었다고 전했다. 특별히 할말도없고해서『알았다』고 말하고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있는뎨 이사령관한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할것이냐』는 것이었다. 뭔가 단안을 내려줘야 할것이 아니냐는 어투였다.
솔직이 말해 내가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면 『행동을 즉각 개시하라』고 말했겠지만 나는 전혀 거사계획을 몰랐었고 총장의 의중도 읽을수 없는 상태여서 어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직 상황이 유동적인것 같소. 정세를 두고 봅시다』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시 나의 입장은 유혈충돌만은 어떻게하든 피해야한다는것 뿐이었다.
하오2시가 조금 지나자 총장비서실에서 『육본참모들은 전원 기밀실로 집합하라』는 연락이 왔다.
기밀실에 들어서니 ㄷ자로 놓인 책상의 중앙에 장도영참모총장과 박정희소장이 앉아 있었고 오른쪽에는 육본참모진이, 왼쪽에는 혁명군 중령·대령들이 앉아 있었다. 참석예정자들이 모두 좌정하자 침묵만 지켜오던 장총장이 『윤보선대통령을 만나고오겠다』는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장총장이 없는 이회의는 당연히 내가 주제해야 하는데 혁명에 대한 나의 소신이 결정되지 않은 마당에 뚜렷한 할말도 없어 계속 침묵만지키고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기밀실분위기도 혁명군측 장교들이 극도로 흥분한 상태인데 반해 육본참모들은 시선의 초점을 잃은채 꿀먹은 벙어리처럼 서로 말한마디 건네지 않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긴 침묵의 시간이 얼마동안 흐른다음 혁명군측의 유원식중령(68·8특·안동) 이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참모차장, 빨리 결심하시오』하고 큰소리로 말하는겻이 아닌가.
『지금 총장이 청와대에 갔으니 곧돌아오겠지요. 내 입장은 결심할 처지가 아니오』라며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당돌한 유중령의 행동이 괘씸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박소장도 유중령의 당돌함에 놀랐던 모양이어서『이봐, 가만있으라』면서 유중령을 나무랐다.
내나이 올해 60세이지만 그때처럼 답답하고 울화가 치민적이 없었던것으로 기억된다.
박소장도 한마디 말을 않고 침묵만 지키고 장총장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하오4시30분쯤 장총장이 기밀실로 돌아왔다. 과연 모든 눈과귀가 장총장에게 쓸렸다.
장총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혁명을 지지한다』고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5·16군사혁명사등에는 5·16 새벽에 계엄이 선포된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이 순간부터 계엄업무가 시작됐다.
장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고 박정희소장이 계엄작전부사령관, 내가 개엄행정부사령관에 정식 임명됐다.
16일 새벽에 비상소집이 돼 집을 나온후 꼬박 1주일을 육본안에 틀어박혀 계엄업무를 처리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내가 워낙 집을 오랫동안 비웠던 탓으로 당시 미대사관 문정관이었던 「핸더슨」씨가 우리집에 전화를 걸어 『장차장이 무사한가. 혹시 붙잡혀간것 아니냐』고 물어왔을 정도였다. 「핸더슨」씨와는 문정관실 업무관계로 강인(현제명박사)과 친하게 지낸연고로 나하고도 몇번 만나 식사를 나눈 사이었다. 그는 나에 대한 안부보다는 군사혁명에 대한 미대사관 나름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전화를 했던것 같다.
계엄초기의 모든 국고지출은 백선진육본관리참모부장(61·군영·예비역소장·평양)이 기안한 지출결의서에 내가 사인해 집행했다. 육본의 살림살이를 하다가 갑자기 규모가 커진 살림을 맡게되니 겁도 났다. 『과연 큰돈을 이렇게 써도 되겠는가. 이러다간 국가경제에 구덩이 생기지나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혁명과업을 위해 돈을 쓴다는데 꼬치꼬치 따질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백선진씨는 결국 혁명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입각했다.
앞서 2기생 이야기를 하면서 박정희장군과 나와의 관계를 잠깐 언급했었다. 그분은 군대를 나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일본육사는 2년 선배였다.
혁명후 단둘이 만날 기회는 그리많지 않았지만 62년 내가 참모차창직에서 2군사령관으로 보직이 바뀔때 그는 인편을 통해 『다음번에 1군을 맡게 될테니 계속 수고해 달라』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
1군사령관·합참의장을 거쳐 67년4월9일 예비역으로 전역하면서 그에게 전역신고를 하러 갔더니『정말수고 많았소』하면서 내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자신이 나처럼 군인으로 일생을 마치지 못한것을 못내 안타까와 하는 것처럼 보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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