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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웅 시리즈 <39>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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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YouTube)를 세상에 내놓은 인물이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첸(36·중국 이름 천사쥔(陳士駿))이다. 전자결제 기업인 페이팔에서 일하던 첸은 2005년 직장동료 체드 헐리, 자웨드 카림과 함께 유튜브를 설립했다. 유튜브 창업은 생활 속 작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2005년 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찍은 동영상을 참석자들에게 전달하려던 첸은 문득 일일이 보내기가 귀찮아졌다. 한곳에 동영상을 올려 공유할 수 있다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

창의력 길러준 인문학과 페이팔에서 배운 시스템

첸은 그의 자서전에서 유튜브 창업의 원동력을 창의력 향상에 주안점을 둔 미국의 교육 방식을 통해 찾았다고 설명한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던 것이다. 암기만 강요하고 학생들 스스로 문제 해결법을 찾는 데 무관심했던 대만의 교육 방식으로는 유튜브 창업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대에 진학했지만 역사와 철학 과목을 열심히 들으며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상상의 폭을 넓혔다.

유튜브 창업에는 첫 직장인 페이팔에서의 경력도 큰 도움이 됐다.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했다. 일이 많고 다양하며 한꺼번에 몰려들고 밤낮없이 집중해야 하는 것까지는 실리콘밸리 벤처 기업 근무자의 일반적인 삶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젊고 진취적인 인재가 몰려 있던 당시 페이팔은 관리자가 거의 없이 실무자가 업무를 주도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었다. 엔지니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각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웹디자이너는 이를 사이트로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기획안을 마련해 프레젠테이션 하고 회의를 거쳐 결제를 받은 뒤에야 실행에 옮기는 일반 기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처럼 ‘창의력이 즉각 꽃피는 직장’에선 ‘IT기업의 속도전’이 가능해지게 마련이다. 페이팔은 급속도로 강해졌다.

그는 같은 엔지니어인 자웨드와 함께 창업 초기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을 맡았다.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 줄 아는 웹 디자이너 채드도 끌어들였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힘을 합치면 인터넷 사이트는 날개를 달게 된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결합은 실리콘밸리에서 전형적인 창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공동창업자 스티브 첸(왼쪽)과 채드 헐리.

하루 만에 작명한 ‘유튜브’

페이팔은 상장 5개월 뒤인 2002년 7월 이베이(eBay)에 팔렸다. 그러면서 최고경영자 맥스 레브친, 부회장 리드 호프먼을 비롯한 경영진이 떠나며 기업 문화가 확 바뀌었다. 페이팔이 자랑하던 진취적인 속도전의 분위기는 관료적인 기업문화로 바뀌어갔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대신 경영진이라는 비전문가들이 회사를 지배하게 됐다. 그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대접받지 못하게 된 것에 실망해 짐을 쌌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다.

유튜브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각자의 장점을 복합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융·복합 벤처인 유튜브의 창업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토론으로 시작됐다. 한 달이 넘는 토론을 통해 누구나 사용하기 쉬우며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이 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유튜브’라는 이름은 불과 하루 만에 나왔다. 당신 또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유(You)와 텔레비전을 의미하는 튜브(Tube)를 결합해 모든 사람, 또는 바로 당신이 시청자 겸 제작자라는 뜻을 강조했다. 이는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프로슈머(prosumer) 시대에 걸맞은 이름으로 평가받았다. 프로슈머는 생산자인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인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한 신조어다. 소비자인데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등 생산 과정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창업 1년 만에 1조6000억원 가치 인정 받아

2005년 6월 이들은 유튜브의 동영상을 다른 곳에 얼마든지 ‘퍼나르기’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다. 콘텐트를 공개하고 분배하면서 사이트가 더욱 커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확산된 동영상에는 유튜브 마크와 링크 주소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매달 이용자가 두 배로 불면서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미국 밖에서 나오는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전 세계에 빛의 속도로 전파하는 미디어로 진화한 것이다.

유튜브는 창업 1년 만에 구글과 야후로부터 동시에 인수를 제안 받았다. 양측 대표를 모두 만나본 첸은 수많은 자회사가 모기업의 지시를 받는 수직적인 분위기의 야후보다 수평적이고 기술지향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구글을 선택했다. 유튜브는 창업 1년여 만에 구글에 16억5000만 달러(1조6000억원)에 팔렸다. 전 세계 벤처업계의 신화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첸은 그 후 2009년까지 구글에서 유튜브를 글로벌 서비스로 키우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왔다가 구글코리아 마케팅 매니저였던 박지현씨를 만나 결혼했다. 2009년 새로운 창업을 위해 구글을 떠났던 그는 최근 구글이 운영하는 벤처캐피탈 ‘구글벤처스’로 돌아와 일하고 있다. 그가 앞으로 어떤 벤처를 만들어 세상을 바꿀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스티브 첸이 걸어온 길

1978년 8월 18일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태어남. 1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일리노이주에 정착. 알링턴 하이츠의 존 허시 고등학교와 오로라시의 일리노이 수학·과학 아카데미에서 공부. 명문 어버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컴퓨터과학과 입학.

1999년 11월 200달러와 담요 한 장 들고 실리콘밸리에 와 전자결제 기업인 ‘페이팔’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로 보냄. 관리자가 거의 없이 실무자가 업무 진행을 주도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익힘. ‘IT기업의 속도전’이 가능해지는 스타일.

2002년 어버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컴퓨터과학과 졸업.

2002년 7월 페이팔, 상장 5개월 만에 이베이(eBay)에 팔림.

2005년 직장동료이던 체드 헐리, 자웨드 카림과 함께 유튜브 설립.

2006년 유튜브 창업 1년여 만에 구글에 16억5000만 달러에 인수. 이후 2009년까지 구글에서 일함.

2009년 구글 코리아의 박지현(제이미 첸)과 결혼.

2010년 체드 헐리와 함께 야후의 웹사이트 ‘딜리셔스’ 라는 아보스 시스템을 시작. 톤브리지 웰스로 이주해 부인과 아들 조셉, 딸 클라라와 현재까지 거주.

정지원 자유기고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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