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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반기문 지지율 1위, 이런 게 비정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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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얼마 전에 별 생각 없이 웹 서핑을 하다 흥미로운 과거 기사를 발견했다. 2009년 1월에 나온 모 일간지의 기사였는데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 지지율 1위는 29.1%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뭐 당연하다. 기자가 놀란 건 1위가 아니라 11.8%로 2위를 차지한 인사 때문이었다. 이회창·정몽준·정동영 등 쟁쟁한 인물들을 뒤로 밀어내고 깜짝 스타로 떠오른 인물은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어라? 그때 이미 ‘반기문 대망론’ 얘기가 나왔던가?

 우리 정치권이 워낙 파란만장해서 6년 전 상황이 마치 60년 전 같다. 더듬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 무렵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었던 야당 주변에서 반 총장을 차기 주자로 키우자는 주장이 잠깐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실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것으로 판명 나면서 없었던 얘기가 됐다. 개인적으로도 반 총장 대선 출마는 황당무계한 가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어 버렸나 보다. 세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국제지도자를 진흙탕 개 싸움과 비슷한 양상인 국내 대선판에 끌어들여서야 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슬그머니 다시 ‘반기문 대망론’이 유령처럼 정치권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는 여당 쪽에서다. 올해 신년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휩쓸었다고 한다. 한숨이 나온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국내에 있지도 않은 인사가 가장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심지어 반 총장은 공식자료까지 내면서 “대선 출마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국내 정치권과 철저히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사람을 굳이 여론조사에 집어넣어 대선 후보로 띄우는 정치문화도 어디에 또 있을까. 반 총장은 이번에 지지율 1위 보고를 받고 말 없이 씁쓸히 웃기만 했다는데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대중적 인기가 정치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반 총장을 대신해 2012년 대선판에 뛰어들었던 유명한 벤처기업가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반기문 지지율 1위의 의미는 정치적 예측에 있다기보단 국민이 현 정치권에 대해 불만이 대단히 크다는 경고로 봐야 할 것 같다. 기성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에게 신뢰를 못 줬으면 한 번도 정치를 안 해본 인사가 차기 지도자 1순위로 꼽힐까. 이런 건 비정상이다. 새해를 맞아 정치권의 각성과 분발을 기대해 본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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