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모자랐던 김 한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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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학에 입학한 외아들이 병영집체훈련을 받기 위해 문무대로 떠나던 날 아침의 일이다.
평소 아들은 아침잠이 많은지라 아침을 못먹고 떠나기 십상이어서 집합장소에 나가 김밥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새벽기도에서 돌아오는 길로 바로 김밥준비를 서둘렀다.
쇠고기·당근·단무지·오이를 각각 볶고 재어서 10쪽으로 나누어 놓고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김밥속이 떨어지자 김도 떨어진다. 김 한톳을 구웠으니 10등분한 속과 함께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즐거움이 용솟음치는 것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들이 갓난아이였을 무렵 그때도 우리식구들은 김밥을 무척 좋아했다.
김밥이라면 자신이 있던 나는 솜씨를 내어 김밥을 말라치면 늘 속이 남아 언짢았던게 보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밥속은 늘 열쪽으로 갈라놓았지만 김 한톳은 7∼8장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김한톳이 9장이돼 속이 한쪽만 남게되면 나는 무슨 대단한 횡재라도 만난 듯이 좋아하곤 했던 것이다.
김뿐이 아니었다. 오징어를 사려고 보면 10개가 붙어 있어야할 다리는 많아야 8개였고, 눈도 없고 실지어 귀까지 없을 때도 많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배추잠수 아저씨와 분명히 세었던 김장배추가 집에와 다시 세어보면 많이도 모자라 귀신이 곡할 지경이었던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김한톳은 세지 않아도 늘 10장이고, 오징어 다리는 어김없이 10개가 예쁘게 달려있게 됐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에서부터「정직」이 자리잡혀 가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돌아서니 버스정류장엔 승객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직과 질서가 뿌리내린 사회-이것이야말로 문화시민, 1등 국민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서울서대문구남가좌동5의199> 이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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