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구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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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역사란 우리에게 얼마나 전표과 웃음을 번갈아 자아내는가.
33년전 l윌, 한국동란의 숨막히는 고비를 맞으며 멀리 미국권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들을 더욱 그것을 실감나게 한다.

<1951년 1월9일·미국 함참의 작전지침서·제5합②>
『귀하의 판단으로 병력과 장비의 혹심한 손실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한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철수하라』
여기의 「귀하」는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장군. 이런 작전지침을 반은 「맥아더」는 우선 불쾌했다.
유엔군의 한반도 철수와 같은 「엄청난 결정」과 「혹심한 손실」의 판단을 어떻게 현지사령관 혼자의 재량권에 맡길 수 있다는 말인가.
뒤집어 생각하면「맥아더」장군은 순간적인 판단만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었다.

< 그 3일 후·백악관에서 「트루먼」대통령, 「애치슨」국무장관, 「마셜」국방장관, 합삼장성 등 15인회의>
『초점은 철수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가 아니고, 철수개시를 언제 명령하느냐의 타이밍 문제다.』
벌써 모든 결점은 끝난 순간이다.
누구도 아닌, 바로 미국 육군 삼모 총장 「로튼·콜린즈」인장의 발언이다.
이때 「트루먼」대통령은 한국인이 살해되도록 방치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시.

< 같은날 (1윌12일)·「맥아더」장군이 받은 미합삼의 전문> 『현조건 아래서는 한반도의 일부 지역을 장기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젠 의심할 바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결정은 시계가 할 차례였다.

<1월19일·국무생 각서>
『한국의 전투 능력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미함삼 「콜린즈」장군과 「반덴버그」장군의 한국전선 시찰보고.

<미 8군사령관 「매듀·b·리지웨이」중장의 발언>
그 무렵 「리지웨이」장군은 철수문제를 『결코 밝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절수하는 절차마저도 소리없는 바람처럼 은밀히 진행할 작정이었다.
그때 「딘·러스크」 극동문제 담당 국무차관보는 고독하게 「극비각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 l윌12일·국무장관귀하 『한국내에서의 계속적인 저항』에 관한 각서>
『한국내에서의 계속 항쟁이 미국탄에 극히 중요하며 국방성과 함삼은 최고의 상상력을 동원해 한국내에서 미군에 큰 손실 없이 저항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대통령이 지시하도록 해야 한다』
앞서의 문건들은 모두 최근 공개된 미국무성의 극비문서 『미 외교단계 제7권 한국과 중국 1951년』에 나오는 정실들이다.
역사는 오늘의 보혈로서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만일 그 무렵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결사적 회전의 노력이 없었다면 결국 오늘도 없을 것이다.
위기속에서 두려운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33년전의 역사는 교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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