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서 27년 통역한 통 킴씨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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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 공동성명은 언어의 지뢰밭이라고 할 수 있다. 문구에 오해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성명 발표 하루 만에 북한과 미국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한 것도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 국무부에서 27년 동안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한 뒤 6월 퇴임한 김동현(미국명 통 킴.70.사진) 고려대 연구교수는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몇몇 핵심적인 문구를 놓고 북한과 미국, 한국의 해석이 다를 수 있어 앞으로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한 예로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verifiable) 비핵화' 대목을 들었다. 그는 "북한이 이 표현을 놓고 남한 핵시설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선 생각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북한은 주한미군 시설과 원자력연구소 등에 대한 검증을 주장할지 모른다고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abandon)'는 문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abandon이란 말은 그대로 버려둔다는 뜻인데 이는 미국이 주장하던 핵시설 '철폐(dismantle)'란 말과 달라 나중에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공동성명에 북핵 문제를 풀어나갈 순서가 적시되지 않은 것은 북.미 사이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며 "합의 내용을 실천하려면 양측 간 신뢰 형성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78년 미 국무부 통역관이 된 이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부터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까지 4명의 대통령과 국무.국방 장관 등 최고위 인사들의 한국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평양도 17차례나 방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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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 25일자에 공동성명의 허점을 지적하는 글을 기고했는데.

"합의문엔 애매모호한 것이 많다. 그것만으로 핵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 공동성명은 엄밀히 말하면 의제의 나열에 불과하다."

-북.미 간 신뢰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합의문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과 북한이 92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엄수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서로 불신하기 때문이다. 신뢰가 형성되려면 양측이 일단 말조심을 해야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쌍방이 선의를 표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회란 고위급 접촉을 말한다. 그런 기회를 자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동아태 차관보가 방북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방북이 북한의 대미(對美) 신뢰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1월 회담에서 경수로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나.

"합의문에 '적당한 시점'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돼 있어 역시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은 선(先) 경수로 제공, 후(後) 핵포기라며 미국과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5차 6자회담이 겨울을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겨울을 나기에 어려울 정도라면 북한이 다소 유연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경수로 제공과 핵 동결을 병행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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