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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 내 나이 69세 꽃다운 여중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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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길을 가다 돌을 만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고 하지만 강자는 디딤돌이라고 한다.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

“나에게는 포기란 없다.” 나점순씨가 자신의 좌우명을 칠판에 적었다. 그는 올해 69세 나이로 양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다. 나씨는 담임 홍은표 교사에게 늘 질문하는, 궁금증 많은 모범생이었다. 지난 4년간 국어·한자·수학을 배우며 정말 행복했다. 60여 년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터라 처음에는 단어 하나 쓰는 데도 시간이 걸렸지만 이젠 그 어떤 문장도 술술 쓴다.

또박또박 써 내려간 세 글자. 60여 년(69세, 충남 부여 출생) 동안 쓰기는커녕 읽지도 못했던 내 이름이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던 그 막막하고 서러웠던 세월을 어찌 다 설명할까. 유년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유다.

내 나이 12살, 꿈 많던 소녀는 세상이 미웠다. 6·25 전쟁이 끝난 지 5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간절한 청을 부모는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농사짓느라 바쁜 부모를 대신해 동생 11명을 돌보는 건 살림 밑천 큰딸의 몫이었기에. 친구들이 책보자기 메고 하교할 때쯤이면 매일 사립문 뒤에 숨어 혼자 눈물을 훔쳤다. 세상이 야속했다. 때론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운명을 탓했고, 또 때론 가르치지도 못할 자식을 12명이나 낳은 엄마를 원망했다. “여자는 집에서 조신하게 지내다 시집이나 가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버지도 미웠다.

글이라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마음 속에 한(恨)으로 자리잡았지만,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자상한 남자와 연애해 단란한 가정을 꾸릴 때까지는 크게 상처받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첫아이 임신 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시어머니가 군대 간 막내 시동생에게 온 편지에 답장을 하라는 거다. 시어머니가 무서워 명을 거역할 수도, 그렇다고 자존심 구기며 차마 까막눈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열두 살 때 그랬던 것처럼 집 뒷산에 올라 또 다시 세상을 원망했다. 왜 이렇게 불행하고 가여운 존재로 태어났을까. 친한 동생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이후 편지봉투만 봐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당시 충격이 컸다.

그랬던 내가 이제 성인 대상 4년제 초등학교인 양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올 3월 일성여자중학교에 입학한다. 경기도 화성 집에서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학교까지 왕복 5시간이 걸리지만 지난 4년간 결석 한 번 안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어찌 놓칠 수 있을까. 등·하굣길에 마주치는 지하철 역명을 한글로, 한자로, 영어로 읽을 때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2015년은 새로운 도전의 해다. 더 어려운 공부를 할 생각에 설레면서도 진도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두렵다. 하지만 도전은 계속할 거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아니 하늘이 부르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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