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열린 신학자' 변선환 복권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우리의 스승 변선환, 이분이/ 충정로 샛길을 구부정하게 걸어갈 때/우리가 만난 것은 한때 도스토예프스키였고/ 어느 해 여름엔가는 비오는 날의 욥(구약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었다가/작열하는 태양 아래 까뮈였다/…/우리가 만난 것은 고뇌하는 아시아, 아시아였다…"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신대 채플실. 평소 '이아무개'라는 필명을 쓰는 '열린 신앙인' 이현주 목사는 긴 시를 낭송했다. 스승인 일아(一雅) 변선환의 삶을 기리는 시다. 이날 '변선환 학장 10주기 추모행사'는 개신교 원로 강원용 목사도 축사를 함으로써 무게감과 비중을 더했다. "일아가 13년 전 92년 2월 감리교에서 출교(黜敎)당했던 사람 맞아?" 싶을 정도로 우호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일아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발언 때문에 위험한 자유주의 신학자로 낙인 찍혀 92년 감리교에서 쫓겨나면서 개신교 전체에까지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 그의 복권과 명예회복 논의가 사후 10년 만에 무르익고 있다. 추모 모임에 감신대 김외식 총장이 설교를 맡았다는 점도 그동안 보수화.근본주의 경향에서 자유로와지려는 개신교의 자기갱신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우선 감신대 총동문회가 일아의 복권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감신대의 이정배.이찬수.김영복.최승태 교수 목사 등 일아의 17명의 제자들도 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를 펴내 '열린 신앙'의 삶과 신학을 조명하고 나섰다. 논문집의 핵심은 13년 전 그를 출교한 결정은 일아 신학의 창의적인 태도에 대한 오해라는 것,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의 근본주의 신앙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성찰을 담고 있다.

10년 전과 달리 '열린 신앙'으로 가려는 분위기는 일아의 제자인 재미(在美) 정희수 목사의 한국 방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 목사는 도미 이후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감리교의 핵심인물로 성장한 사람. 현재 위스콘신 주 지역의 감리교 목사들의 총책임자인 감독을 맡고 있다. 5일 추모모임에서는 기독교.불교 사이의 종교간 대화를 강조한 일아의 신학이 현재 세계 기독교의 커다란 추세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일아의 제자인 이정배 목사는 "5일 추모 모임 자체가 복권의 신호탄"이라며"복권을 결정할 내년 3월 감리교서울지역 연회(年會) 이전에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변선환은 누구?
평남 진남포 태생의 신학자 고(故) 변선환(1927∼95·사진)은 감신대를 거쳐 미국 드루대 등에서 공부했다. 그때 철학자 칼 야스퍼스, 신학자 불트만 등의 사상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에 돌아온 70년대 후반부터는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역설하던 중 92년 감리교의 최고형인 '출교'를 당했다. 이유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발언을 한 데다 불교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선 수행과 기도의 닮은 점을 인정했다는 점 등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 '신앙적 사형'에 해당하는 출교 결정이 한국판 종교재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는 점이다. 최대광 목사(정동교회)는 "92년 출교 이후 다양한 신학적 논의에 제동이 걸려 자유주의 신학 논의를 이단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교회의 경직화 현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