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장수노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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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1년전쯤 이사온 노부부가 있다.
60세를 바라보는 이들중 늙은 부부는 A시장과 B시장을 사이에 두고 새벽에 시골에서 올라오는쌀, 기타의 잡곡들을 사서 오후에는 다른 시장에 됫박으로 팔곤한다.
가게도 없이 비가 오면 남의 점포 처마밑에서, 때로는 시장의 경비아저씨들에게 쫓겨다니면서. 어떻게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 방법이 눈물겨울때도있다.
지난해 제대해서 복학한 아들과 막내 아들이 대학에 재학중이고, 큰 아들은 대학원까지 나와 모대학에 강사로 나간다고한다.
내가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점은, 맨션에 살고 있는 큰 아들 부부가 가끔 이들 부부를 찾곤하지만 그들 가족들 사이가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부부는 내가 쌀을 사러 가면 곧잘 당신 며느리 얘기를 하신다.
부자집 딸이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이를테면 이들 가족들사이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아주 질기고 끈끈한 사랑으로 얽어 매어져있는 느낌이었다.
노점의 쌀장수인 부모와 대학강단의 강사아들, 좀처럼 어울릴수 없을 것같은 그들.
그러나 그들은 진실로 사랑을 아는사람들이었다.
조금 늙었다고 해서 전적으로 자식에게 효도를 요구하는, 자식이 가져오는 금전의 양으로 효를 저울질하는 부모는 얼마나 많은가.
대학까지 공부시켰더니 서울에 온 초라한 아버지를 자기네 머슴이라고 했다는 일화까지 있는, 못난 부모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자식은 또 얼마나많은가.
나는 곧잘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목을 내놓고 리어카를 끌고가는 새벽의 그네들을 바라보곤한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바람이 되어 기도하는 자세가 된다.
오늘하루도 많은 이익을 남기고, 살찐 웃음과 푸근한 마음을 리어카 가득 싣고 돌아올 수 있게되기를 빌면서. <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우정아파트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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