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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백년노송 '재선충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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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材線蟲)이 천년 고도 경주의 무열왕릉 주변까지 번졌다. 이에 따라 경북도와 경주시는 재선충이 다른 문화재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가 높은 것으로 보고 감염경로 확인 및 방재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경북도는 "12일 경주시 서악동 무열왕릉(사적 20호) 맞은편 500여m 떨어진 야산에서 말라죽은 소나무를 도 산림환경연구소에 감정한 결과 재선충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피해 소나무는 1㏊에 20여 그루로 조사됐다.

경주엔 지난해 12월 양남면 수렴리에서 소나무 재선충이 첫 발병한 이후 지금까지 피해면적이 4.7㏊에 달하지만 문화재가 밀집한 도심과는 수십㎞ 떨어진 곳이었다. 경주지역의 문화재와 사적지는 대부분 수령 100여년 된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무열왕릉은 왕릉 이외에 국보 25호로 지정된 무열왕릉비와 주변에 아름드리 노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김유신장군묘(사적 21호)도 서악동 재선충 발생지역에서 2㎞쯤 떨어져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산도 가까운 곳은 3㎞ 정도 거리다.

특히 골골이 절터와 탑.마애석불 등이 모여 있는 남산은 소나무가 주종이다. 또 천마총.첨성대.안압지 등도 발생지역에서 반경 4㎞ 내외 거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윤근일 소장은 "태풍 '매미'때 삼릉과 남산의 소나무가 많이 쓰러져 아직도 소생이 안 됐다"며 "재선충이 경주에 확산돼 소나무가 죽는다면 사적지엔 재앙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소나무 재선충 발생의 북단인 경북지역엔 2001년 구미에서 처음 발생한 뒤 2003년 칠곡, 2004년엔 포항과 경주, 올해는 다시 청도와 안동.영천.경산 등지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경주 문화재 지역은 물론 울진 금강송 군락지도 안전지대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방역 활동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경주시는 서악동에서 확인된 고사목 5그루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재선충 발생지역임을 알리는 접근금지 표지를 붙인 뒤 예찰원을 통해 확산 여부를 지켜볼 뿐이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가 현재 활동을 멈춘 시기여서 항공방제 등 방역활동이 효과가 없는 데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개발한 예방주사 에마멕틴 액제도 송진이 나오지 않는 2월이 돼야 주입할 수 있어 방역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방역을 위해 소나무에 구멍을 뚫을 경우 송진이 구멍을 막아 약제를 계속 주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북도 산림보호과 손재선씨는 "현재 문화재청과 방역예산 조기 지원 등 대책을 협의 중"이라며 "다음달 중 발생지역 반경 1㎞의 소나무에 대해 솔잎이 마르는지 지켜보는 전수 조사를 벌인 뒤 필요하면 반경 5㎞까지 조사구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소나무 재선충 방제특별법=정부는 21일부터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소나무 재선충을 막기 위해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신고한 사람에게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경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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