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금리 상승 대비한 '황영기 안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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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상승에 본격 대비해야 한다. 집을 사려면 10~20년의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게 유리하며, 여윳돈이 있다면 우량 주식을 사야 할 때다."

시중 실세 금리가 슬금슬금 오르는 가운데 황영기 우리은행장의 발 빠른 시장 진단이 눈길을 끌고 있다.

황 행장은 지난달 10일 월례 조례에서 시중은행장으로선 처음으로 금리 인상기에 대비하자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황 행장은 "지금쯤은 저금리 시대를 벗어날 가능성은 없는가 유심히 살펴야 한다"며 "본부 부서들은 금리가 오르면 어떤 전략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고객에게 서비스해야 하는지 점검하라"고 말했다. 당시 국내 금융시장에선 한국은행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금리에 손을 대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황 행장은 21일 콜금리 인상 문제와 관련, "시중은행장이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은행과 고객들은 금리가 오른다는 가정 아래 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과잉생산으로 전 세계에 물가 안정의 혜택을 줬지만 과잉생산의 끝은 원자재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점이 문제일 뿐이지 원자재 부족은 물가 상승을 낳고, 이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현재 금리는 바닥을 벗어나 상승추세로 접어들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집을 사려면 10~20년 장기 고정금리로 돈을 빌리는 게 유리하며, 부동산이나 채권 등 어느 자산보다도 주식이 유망한 상황이라고 그는 말했다. 황 행장은 "수익성.성장성 등 어느 면을 봐서도 지금 한국의 우량 주식은 저평가돼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은행은 13일 고객이 금리인상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소호(SOHO) 사업자용 고정금리 대출을 내놓고, 자금 담당 부서는 장기 고정금리로 자금 조달을 검토하는 등 금리 인상에 대비한 영업에 본격 착수했다. 아울러 우리투자증권 등과 협조해 펀드 등 주식간접투자 상품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금융시장 흐름은 황 행장의 예상대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16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정례 금융협의회에서 시중은행장들은 직접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금리를 올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시장 분위기를 전달했다고 황 행장은 전했다. 요즘 황 행장의 발걸음은 가볍다. 타은행에 한발 앞서 금리 인상에 대비하는가 하면, 중국 영업을 위해 직접 현지의 금융감독 당국자를 만나기도 한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예금보험공사와의 스톡옵션 마찰, 철도청의 유전사업 대출 등 잇따른 악재로 의기소침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영업 기반이 탄탄해지고 실적이 쑥쑥 좋아지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924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4.5%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지난해 말 8530원에서 21일 현재 1만4700원으로 72%나 올랐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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