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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APEC 테러 비상] 현지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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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부산 해경 소속 경비정이 20일 APEC 2차 정상회의 장소인 부산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앞을 순찰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13일 오전 부산시 사상구 삼락체육공원. 러시아제 28인승 헬기 한 대가 공중에서 굉음을 내는가 싶더니 완전 무장한 특공대원 20여 명이 헬기에서 로프를 타고 정해진 지점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특공대원들은 이날 1시간30분 동안 수 차례 착지훈련을 반복했다.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대비한 테러 진압 훈련의 일환이다.

14일 오전 부산 외곽의 부산지방경찰청 특공대 훈련장. 레이저 조준경이 달린 총을 쥔 특공대 저격수들의 표정에 긴장이 흐른다. 그들은 400m 떨어진 곳에 있는 사과를 맞히는 사격훈련을 되풀이했다. 5명이 1개조를 이뤄 건물을 급습,테러범을 진압하는 훈련도 했다.

APEC 정상회의를 두 달 정도 앞둔 부산에 테러 비상이 걸렸다. 청와대.국정원.국방부.경찰청.소방방재청 등으로 구성된 'APEC 경호안전통제단'이 1차 정상회의가 열리는 해운대 벡스코에서 1일 개소식을 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김세옥 청와대 경호실장이 단장을 맡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는 각국 정상과 각료 등을 경호하는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일본.중국.러시아 영사관 등 외국 공관을 비롯해 테러 발생 우려가 큰 부산진구 하얄리아 부대 등 14개 미군 시설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APEC 경호경비단장을 맡고 있는 김병철 부산경찰청 차장은 "7.7 런던 테러 이후 벡스코.공항 등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실제 상황을 가상한 테러 진압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상경비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부산해양청은 다음달 1일부터 11월 말까지 두 달간을 부산항 특별경계 강화기간으로 정하고, 보안 등급을 1등급에서 2등급(경계 단계)으로 올려 항만 출입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한다. 부산해경은 2차 정상회의장인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앞 해상에서 고속경비정으로 해상을 봉쇄하는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부산세관은 고성능 폐쇄회로 카메라 105대 등 첨단 감시시스템을 통해 24시간 부산항 각 부두를 감시하고 있다. 김해공항은 그동안 X선 투시기만 통과하면 되었던 전자 제품을 일일이 육안으로 확인하고 있다. 또 공항 보호구역 입구 8곳에 지문인식 시스템을 설치했다.

부산체신청은 1일부터 우편안전대책팀을 가동, 부산으로 오는 모든 국제우편물에 대해 X선 투시기, 화학.방사능 탐지기, 폭발물 탐지기를 통한 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부산=김관종 기자

정상회담 외국사례
회의장은 외딴 섬 … 숙소는 항공모함

세계 각국은 '안전한 정상회담'을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총회 때부터 한층 격렬해진 반(反)세계화 시위와 2001년 9.11 테러는 각국의 테러 대비와 경호 수준.강도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2001년 7월 대대적인 반세계화 시위 속에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의 경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아예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불러와 그곳에서 숙박을 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호화 유람선 '유럽 비전'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로 1명이 사망하고 230여 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주최 측은 제노바항에서 한참 떨어진 유람선 선상으로 회담장소까지 급히 바꿨다. 이듬해 G8 정상회담 개최국인 캐나다는 회담장소를 로키산맥 깊숙이 자리 잡은 휴양도시 카나나스키스로 잡았다. 도시 진입로 주변에 수천 명의 경찰을 배치해 외부인의 접근 자체를 막았다. 때문에 시위대는 회담장에서 100여㎞ 떨어진 캘거리에서 시위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도 지난해 6월 조지아주의 외딴 섬 '시 아일랜드'에서 G8 정상회담을 열었다.

회담이 열리는 도시 자체를 '특별경호구역'으로 설정해 외부인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9.11 직후인 2001년 10월 APEC 정상회의를 주최한 중국은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지구 전역의 출입을 통제했다. 개막 사흘 전부터는 푸둥 지구 내 모든 음식점과 유흥업소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이 곳에 근무하던 종업원 5만여 명도 도시 외곽으로 빼돌렸다.

박신홍 기자

국정원 대 테러책임자 인터뷰
"이라크 파병국 공격 가능성 알카에다 첩보 잇따라 입수"

국가정보원 산하 테러정보통합센터는 한국의 대 테러 사령탑이다. 통합센터는 국내외 테러 정보를 수집.관리하고 24시간 정부 합동 대응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신상 공개를 금지하고 있는 국정원법에 따라 통합센터 책임자 인터뷰는 19일 서면으로 이뤄졌다.

-알카에다가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를 겨냥해 테러에 나설 가능성은.

"개연성은 충분하다. 테러 조직이 1990년대 중반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주한미군과 한국을 경유하는 항공기를 겨냥한 테러 공격을 검토한 것이 확인됐다. 또 지난해 10월 알카에다 2인자 알 자와히리가 한국을 테러 대상국가로 거명한 이래 협박성 테러 첩보가 지속적으로 입수되고 있다."

-알카에다가 APEC 정상회의를 노리는 이유는.

"APEC은 21개국 정상을 포함해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APEC 행사장이나 서울을 공격한다면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테러 책임을 이라크 파병국 정부에 전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라크 파병 연장안 국회 표결을 앞두고 한국 내 논란을 유발하고, 한.미동맹의 균열을 꾀할 수도 있다. "

-서울에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은.

"테러 조직이 경계가 강화된 부산보다 서울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9.11 이후 테러 조직은 호텔.백화점.지하철 등 접근이 용이한 다중 이용시설(소프트 타깃)을 겨냥해 무차별 테러를 자행하는 경향이 있다. "

-서울과 부산에는 400개 이상의 지하철역과 수천 대의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이를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

"정부는 7.7 런던 테러 이후 서울.부산 지하철에 감시 장비를 추가 설치키로 했다. APEC 회의 같은 대규모 행사의 안전 확보는 전 국민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상한 사람이나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면 국번 없이 111 또는 112, 119로 신고해 주기 바란다. 또 테러로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휴대전화로 현장을 촬영해 통합센터(http://tiic.nis.go.kr)로 제보해 주기 바란다."

최원기 기자 <brent1@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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