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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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모두 열여섯 편. 본심대상으로는 많은 분량이지만, 전체 응모작으로 보면 1.6%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양적인 풍요로 인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우수한 작품이 많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다소 빗나갔다. 많은 작품들이 세계와 문학 사이의 경계 또는 접점에 대한 치열한 탐색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재와 표현방식에서 유행적 흐름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중앙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최종심사에서는 네 편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검토되었다. 왼쪽부터 소설가 박범신오정희씨, 평론가 황광수씨.[박종근 기자]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네 편이었다.

'바람의 인상'(이미준)에서 작가는 사진 효과를 위해 음식물에 다른 물질을 바르거나 첨가하는 일을 하는 화자의 삶을 감각적인 문장으로 생기 있게 그려냈지만, 가짜 이미지를 생산하는 자신의 일에 혐오감을 갖게 되는 과정이 우발적 사건으로 마무리됨으로써 비판적 성찰의 거점을 놓쳐버렸다.

'식빵으로 만든 벽'의 작가(강진)는 편지투와 객관적 묘사의 교차 서술을 통해 젊은 동성애자의 심리상태를 절실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요즈음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러한 인물유형의 특이한 존재방식에 대한 인정 투쟁만으로는 더 이상 문학적 새로움을 일구어내기 어렵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비단복어'(장영희)는 복어 요리와 관련된 세목들과 5년간 동거했던 남자의 죽음의 과정을 오버랩시키는 기법과 정갈하고 소박한 문장들은 빼어나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이 화자에게 아무런 심리적 그늘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처리된 마무리는 주제에 대한 치열한 사유보다는 과정의 묘사에 치우쳤다는 인상을 남겼다.

'검은 불가사리'(지하)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일종의 알레고리 소설이다. 이 알레고리를 푸는 하나의 열쇠는 화자의 눈 속에 파고든 별 모양의 불가사리와 그것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작은 병정들을 예술가적 자의식과 일상적 삶에 연관된 타자들의 자리에 놓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고 유지하려는 치열한 정신은 일상적 삶을 보장해주는 사람들과의 불화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을 낳는다. 불안해 보일 만큼 기발한 착상을 짜임새 있게 엮어가며 역동성을 잃지 않은 작가적 역량이 돋보여 이 소설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황광수.박범신.오정희(대표집필:황광수)

◆예심위원=박상우.박덕규.김형경.류보선.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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