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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자 → 노숙자 → 신불자 … 연 매출 11억 '오뚝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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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 서소문로의 메타리스크 사무실에서 이형원 대표가 IT를 활용한 위험관리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해킹 뿐 아니라 내부 리스크까지 관리한다. [김성룡 기자]

#어제는 그제였다. 오늘은 다시 어제와 같은 날. 경기도 분당의 한 고시원에서 그는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들고, 다시 깨서 술을 사러 나가고를 반복했다. 머리는 깨질듯 아픈데 이 상태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나쁜 마음을 먹었다. 구차한 인생을 그렇게 내 손으로 끝내기로 했다. 나란 사람의 삶이 그렇게 2008년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했다. 앰뷸런스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

 #29일 충북 오송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한 산하기관 전산실. 이 기관이 관리하는 개인 정보 가운데 쓸데 없이 수집된 것은 없는지 유출 위험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IT·보안솔루션업체인 ㈜메타리스크 직원 세 사람이 일을 맡았다. 한때 알코올중독자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이 회사 대표 이형원(53)씨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메타리스크의 주특기는 IT를 활용한 위험관리시스템이다. 해킹과 악성코드와 같은 외부 위협 뿐 아니라 내부자의 정보 유출까지 관리하고 대응할 수 있다. 단순 보안에 머무르지 않고 비재무적인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업의 위험 노출을 줄여준다. 이 회사는 2005년 창립해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기술보증기금의 지원을 받으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3전4기’였다.

 한국외 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이씨는 군복무 시절 보안부대에서 암호해독을 맡으면서 전산쪽에 관심을 가졌다. 1987년 금성사(현 LG전자)에 들어갔지만 IT·보안업무에 대한 흥미가 커지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한국생산성본부와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 안철수연구소에서 실력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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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회계부정 사건인 ‘엔론 사태’가 터지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 씨는 재무 뿐 아니라 비재무 리스크도 알고리즘에 따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회사와 직원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조기 경보와 예방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씨는 이렇게 개발한 위험관리시스템(ITRMS)으로 2004년 정보통신부에서 주최하는 ‘IT벤처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받았다. 회사를 세우기도 전에 현대기아차의 위험관리 기반 보안포털 사업을 수주했다. 당시 정보통신부와 중소기업청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약 5억원 지원도 받았다.

 앞길이 트이는 듯 했다. 직원들을 채용하고 조직을 키웠다. 이때 위기가 찾아왔다. 2007년 국내 한 대기업으로부터 주력제품을 공동개발하자는 제안을 받고 6개월 간 정부 지원금을 모두 털어넣어 연구개발을 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갑질’에 말려 지식재산권마저 내놓고 물러나야 했다.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갔다. 활로를 찾기 위해 일본에 동경지사를 세우고 한 회사와 수주 계약을 했다. 하지만 턱 없이 낮은 2000만엔(2억원)에 도장을 찍어 출혈만 커졌다. 3억~4억원의 빚만 남긴채 귀국하니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 대표는 이후 술로 실의를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 교회 창고와 공장에서 노숙자로 살기도 했다. 자살 시도를 한 것도 이 때다. 바닥까지 가고 나니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마침 공군본부의 ‘정보보호위험관리체계’를 공동수주하면서 숨통이 다시 틔였다. 보건복지부·서울시·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사업도 따냈다. 탄력을 더 받기 위해서는 예전 부채를 털고 기술개발에 쓸 투자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주채권자인 기술보증기금에 읍소했더니 지난해 4월 재기지원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기보가 은행권 채무 1억4000만원을 탕감해주면서 이씨는 신용불량자를 벗어나고 추가 자금 1억원도 지원받았다.

  재기는 아직 진행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직원도 정규직 2명을 포함해 10명 가까이로 늘었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 수주 여부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씨는 기업용 위험관리시스템의 개인형 버전을 개발할 생각이다. 성격이나 직업, 습관에 따라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여러번의 실패를 맛본 그는 “실패도 경험이고 중요한 자산”이라며 “목숨만 붙어있으면 기회는 다시 온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스스로 여러 번 물어보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이다.

글=박유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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