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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지계」-대만선 모터족 헬밋 착용 결정에 1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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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어 해전에 대만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터사이클이 유행하여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타고 다니자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놀랍도록 늘어났다. 그러자 당국에서는 모터족이 반드시 헬밋을 쓰도록 하는 법규의 재정을 검토했다.
검토는 l년이 넘어도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관계자들은 헬밋구입이 민생이며 일반물가에 미치는 영향, 모터족의 증가율과 기타 교통수단과의 관계 등을 검토하였다. 헬밋이 과연 인명피해를 어느 정도 절감시킬 수 있느냐를 조사했음은 물론 이었다.

<서두른다고 다되나>
헬밋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규는 이리하여 1년반만에 생겨났다. 하루아침 사이에 모든 자동차에 안전대를 부착하도록 하여 업자들만 때돈을 벌게 만들고 끝난 우리가 볼때에는 어것은 굼뱅이 행정의 표본이다. 1년반 동안이나 늑장을 부리는 동안에 얼마나 더 많은 인명의 희생이 있었겠느냐고 할만도 하다.
그러나 꼭 헬밋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앓다면 공공한 낭비를 모터족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 또 부작용은 달리 없는지를 단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게 중국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를 그들은 「인편」주의라 부른다고 어느 비제학자는 나에게 일러주었다.
일에는 급히 서둘러야 할게 있고 뜸을 들여가며 조심스레 해나가야 할게 있다.
대단찮은 일은 급히 서둘러도 별 상관이 없다. 실수를 저질렀다해도 그 피해는 대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피해라 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리 피하도록 하는게 옮다. 선정이 따로 없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모든 일에 즉흥적어요 충동적이다. 앞뒤를 가릴 경황도 없다. 큰일일수록 더욱 서두른다. 그저 성미가 급해서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손자의 군쟁편에 「우직지계」가 나온다. 「우」는 돌아서 가는 길을 말하지만 거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뜸을 들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곧 급할수록 뜸을 들여 행동하고 돌아서 가라는 뜻이 된다.
우직지계를 잘 쓴 것이 고조였다. 그는 언제나 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물론 전세가 불리할 때에는 재빨리 퇴각해서 뜸을 들여가며 재력을 가다듬고는 대 우회작전을 써서 적군의 후비를 공략했다. 항우는 이와 달리 적만 보이면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충동적으로 정면에서 공격했다. 결국천하를 잡은 것은 일을 서두르지 않은 고조였다.
「우」에는 또 곡선적 사고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탄도가 짧을 때에는 탄환은 직선으로 달려간다. 사정거리가 길면 길수록 탄도는 큰 곡선을 그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큰일일수록 곡선적 사고가 필요하게 된다. 단순한 직선적 사고로는 먼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뿐 아니라 앞뒤를 가누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웬일인지 직선적 사고만을 쫓으려한다. 그리하여 마치 기공식과 준공식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처럼 일을 서두른다.

<세우고 뜯고 멋대로>
지금은 사람들의 기역에서도 사라졌겠지만 몇 해전까지만 해도 남산에는 야외 음악당이란게 있었다. 그 발상은 매우 멋진 것이었다. 시민들의 휴식처인 남산에 시민들을 위한 음악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보스턴의 탱글우드 노천음악제를 보고 착상한 것이라고 했다.
성대한 준공식이 있고, 몇 차례인가 프로미나드 콘서트가 열렸다. 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자동차군의 소음으로 도저히 음악을 제대로 연주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게되었다. 환경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미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몇 년째 음악회가 없는 쓸모 없는 음악당이 되더니 어느 사이엔가 소리없이 헐리고 말았다. 세울 때도 시민의 돈이요, 헐 때도 시민의 돈이었으나 이를 서운하게 여긴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남산의 음악당처럼 비교적 작은 일일 때에는 뒤탈도 크지는 않다. 정신문화연구원과 같은 경우에는 그냥 웃어넘길 수는 없을 만큼 여파가 크다.
당초에 정신문화연구원은 「국학연구의 총본산」이 되겠다며 출범했다. 그런지 5년이 못되는 동안 원장이 네번이나 바뀌고, 그때마다 진로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국민정신교육기관」이 되겠다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지난 5년 동안 그 많은 학자들이 그 많은 돈을 써가며 헛일을 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국학의 전당으로서의 정신문화연구원에 대하여 안팎에서 보낸 가장 큰 비난은 그동안 해낸 업적이 너무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너무 현실과 유리되어있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정신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학문의 연구란 한 주먹의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은 꼭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서만 있을 수 있는게 아니다.
가치의 창조는 그 본래의 성격상 자유스러워야 한다. 어느 결론이 강제되거나 연구방법에 제약이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이른바 국민정신교육에 새로 목표를 두기로 한다면 그렇다면 국학을 위한 정신문화 연구원을 그대로 놓아둔채 새 기관을 세우는게 더 바람직했다. 두개를 같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이 해야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욕심이 많은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진로는 『정신문화의 계발을 위한 학문적 연구와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한 실천지향의 교육』에 양다리를 걸쳐 나간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연구를 교육의 실제와 직결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문화의 계발을 위한 학문적 연구』란 한두해 사이에 무슨 결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에는 경제처럼 5개년 계획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 정신교육이라면 오래도록 뜸을 들여가며 연구해 나가야할 작업이다.

<돌아가는 지혜필요>
우리는 아직 「국민정신교육」이 「국민정신의 교육」을 뜻하는지, 아니면「국민의 정신교육」을 뜻하는지도 알지 못하고있다. 그 어느 경우에나 아카데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학자들이 끼어들 수 있는 일도 사실은 아니다.
학자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것은 자유로이 스스로가 받은 지적 작업을 통하여 부단히 새로운 가치창조를 추구해 나가는 일뿐이다. 이런 작업이 없이는 어떠한 「국민정신교육」도 쓸모 없게 된다.
이런 것을 마치 「교육헌장」이라도 기초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당장에 서둘러 해내겠다는 것처럼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직선적 사고도 없다.
학문과 교육의 세계에서야말로 더욱 손자의 우직지계가 중요한 것이다. <제자 정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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