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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봉 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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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화물연대가 인상을 요구하는 운송료 30%를 우리가 부담하면 사태가 당장 해결되고 좋지요. 그런데 정부는 왜 경유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를 인하하지 못한답니까. 차주들이 공장문을 막는데도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언론에서는 '생존권 투쟁'이라고 보도합니다. 물류비를 줄이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무조건 해결하라며 부담을 떠넘기니 포스코가 무슨 '봉'입니까."

화물연대 포항지부와 운수업체 간에 15% 인상안이 타결된 지난 10일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마음 속에만 담아뒀던 울분을 토해냈다.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직접 피해를 본 것은 화주인 기업이다. 인상된 운임도 결국 이들이 부담할 가능성이 큰데 무조건 알아서 하라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부담은 지면서 협상 참여 못해=포항 지역 협상의 경우 민주노총 운수하역노조.화물연대가 9개 주요 운수업체 대표들과 협상을 했다. 화물연대는 화주인 포스코도 협상장에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포스코가 참여할 명분은 없었다. 화물연대 소속 지입차주는 운수업체와 계약한 것이며 운수업체와 계약을 한 포스코는 지입차주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1백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보자 급해진 포스코는 결국 운수업체에 '손실이 나는 부분을 어떻게든 보전해 주겠다'고 언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의왕컨테이너기지(ICD)도 협상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결국 삼성전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물류가 봉쇄될 경우 손실이 하루 1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협상이 부분 타결되면서 점차 정상화되는 부산항만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6개 대형 화주와 11개 주요 물류회사가 협상장에 앉았지만 이들의 화물 비율은 6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앙 집중 교섭도 운수하역노조가 정부.화물운송사협회와 각각 협상을 하고 있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할 길이 거의 없다.

화주가 물류 직영 나설 수도=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물류 부문을 아웃소싱하면서 원가 절감에 적극 나섰다. LG그룹이 전자.화학에 이어 지난해 산전.건설의 물류를 외부 기업에 위탁했으며 SK케미칼.국순당.코카콜라 등도 물량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아웃소싱했다. 전체 비용의 3% 정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조사 결과 무역업체의 25.7%가 아웃소싱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 비율이 60~70%에 달하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낮다. 또 교통개발연구원이 발표한 2000년 국가물류비는 66조7천억원으로 GDP의 12.8%에 해당한다. 미국(10.1%).일본(9.59%)보다 높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에서 보듯 물류 안정도 안되고 부담은 자꾸 늘어가자 기업들이 위기라고 느끼고 있다. 특히 부품 등을 필요한 만큼만 조달해 재고를 최소화하는 '저스트인타임'방식이 일반화되면서 2~3일간의 운송 거부가 생산 중단 일보 직전에 처한 것이 결정적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부품을 제때 확보하고 주요 고객에 대한 납기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직영 운송체제를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기업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효율성 낮은 부문에 투자하는 결과가 된다.

김창우 기자

<사진설명>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들의 운송 거부 사태로 포항 철강공단 업체들의 제품 반출이 전면 중단된 지난 7일 포스코 공장에 출고되지 못한 스테인리스 코일이 가득 쌓여 있다.[포항=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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