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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교통대란 오나] 4. 도심 진입 막막한 동남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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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천호대로를 지나 청계고가도로를 타고 도심으로 출근했던 송파.강동.광진구 등 서울 동남부 주민들은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가 막막하기만 하다. 청계고가는 동남부와 도심을 잇는 거의 유일한 직선 도로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왕십리길.올림픽대로.강변북로 등 세 곳을 대체 우회도로로 제시하긴 했으나 너무 돌아가거나 정체가 심해 지금도 운전자들이 이용을 꺼린다.

현재 '천호대로~청계고가'코스 이외에 동남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심 진입로는 '천호대교 북단~광나루길~성동교~왕십리길~을지로' 코스나 '강동대로~올림픽대로~동호대교~금호터널'코스다.

다음달 15일 성수대교 북단 강변북로와 옛 강변로를 잇는 두무개길이 개통되면 한남.반포.한강로를 통해서도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올림픽대로.강변북로.왕십리길 등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기존 간선도로들은 결코 청계고가의 대체 도로가 될 수 없다는 게 많은 운전자의 반응이다.

이한수(27.회사원.강동구 명일동)씨는 "서울시가 권장한 대로 청계고가를 이용하지 않고 올림픽대로~동호대교 코스를 경유해 도심에 들어가봤더니 시간은 10분 정도 더 걸리고 택시비는 7천원이 더 나왔다"며 "청계천 복원에 따른 시의 교통 대책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라고 비난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청계천 교통대책 관련 연구보고서도 "도로를 확장하지 않고 우회도로를 제시하는 것은 기존 도로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것 밖에 안된다"며 "하루 평균 교통량이 10만3천대에 이르는 청계고가 이용 차량이 우회도로를 이용하면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는 도로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화상태 이른 도시고속도로=12일 출근시간 본지 취재팀이 찾아간 올림픽대로 동호대교 진입로에는 오전 7시30분부터 차량이 밀려 성수대교 부근까지 늘어섰다.

강변북로도 상황이 비슷해 차량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잠실대교 부근에서부터 제 속도를 내지 못하던 차량들이 동부간선도로와 만나는 성수대교 북단에선 완전히 멈춰섰다.

이 시각 교통방송에선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의 정체가 심하니 돌아가라"는 안내가 10분마다 흘러나왔다. 택시기사 김철주(45)씨는 "이 길이 청계고가 철거를 대비한 우회도로인데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느냐"고 되물었다.

취재팀이 이날 아침 실측한 천호대교~동호대교 남단에 이르는 올림픽대로의 차량 속도는 시속 12~31㎞ 사이. 영동대교를 지나면서 조금 속도를 회복하는 듯 싶더니 동호대교에 가까와서는 다시 거북이 걸음을 시작했다.

강변북로도 천호대교 북단~성수대교 북단 사이 대부분 구간에서 시속 40㎞ 이하의 속도를 보여 도시고속도로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왕십리길 코스는 올림픽대교 북단.왕십리교차로.신당역 주변 등 곳곳에서 시속 20㎞도 낼 수 없었으며 성수 네거리 부근 2㎞ 구간에서는 조금 빨리 걷는 것과 다름 없는 9㎞까지 떨어졌다.

올림픽대로(한남대교~강남로)와 강변북로(아차성길~행주대교)를 지나는 하루 차량은 각각 20만1천여대. 남부순환로(13만2천여대)나 강남대로(10만8천여대) 등 다른 간선도로에 비해 두배 가까운 차들이 다니는 셈이다. 시내 주요 간선도로 가운데 최고의 교통량을 기록한 강변북로의 경우 이미 적정 용량을 30% 정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분석에 따르면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될 경우 현재 하루 평균 16만여대가 다니는 청계고가와 청계천로 교통량의 46%인 7만7천여대가 강변북로.올림픽대로 등 주변 도시고속도로로 몰리게 된다.

아주대 오영태(환경.도시공학부)교수는 "지금도 한계에 다다른 도시고속도로에 청계고가를 이용하던 차량까지 몰리면 도심 교통 전체가 큰 혼란을 빚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극적인 승용차 억제 정책=사실상 무대책에 가까운 청계천 복원 대비 시내 교통대책의 이면에는 운전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승용차를 몰고 나오지 않게 함으로써 버스 등 대중교통 위주로 도로교통을 재편한다는 장기적인 구상이 깔려 있다.

청계천 복원 공사에 따른 교통난은 불가피하지만 이는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겪게 되는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다.

대중교통을 보다 편리하게 만드는 것을 교통 정책의 핵심으로 정한 상황에서 승용차 소통을 위한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시 음성직 대중교통정책보좌관은 "서울처럼 수많은 승용차가 도심에 진입하는 도시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며 "앞으로도 승용차 통행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는 교통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도심 공영주차장의 요금을 25~30% 올리고 7월부터 지하철 2.4호선에 전동차를 추가 편성함으로써 4호선의 경우 속도를 현행 시속 26.7㎞에서 30.8㎞로 빠르게 하겠다는 것도 이런 대책들 중 하나다.

그러나 과연 시민들이 자가용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지는 미지수다. 운전자 행태 연구에 따르면 주차요금 인상 등으로 수요 억제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도심에는 상업시설.백화점 등 민간이 운영하는 주차장이 많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한양대 원제무(도시공학과)교수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지하철 노선이 1백20㎞ 이상 늘어났지만 대중교통 분담률은 겨우 1% 정도 늘어난 데 그쳤다"며 "지하철 속도가 시속 4㎞ 빨라진다고 해서 승용차 이용자들이 당장 지하철로 옮겨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교통환경연구원 신부용 원장도 "도심에 승용차 진입을 억제한다는 정책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나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할 실질적 계획이나 인프라 조성없이 무작정 시민들에게 승용차 이용을 포기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오는 7월 청계고가 철거가 시작되면 강동.광진구 등 서울 동남부 지역도 교통대란에 휩싸이게 된다. 도심과 동남부를 잇는 대체 우회도로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강변북로 성수대교 북단 부근이 12일 오전 심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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