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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충고 "시민이 대한민국호 평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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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깊은 바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미 고철이 돼버린 제 몸은 거센 조류에도 좀체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가 가라앉을 때 숱한 어린 생명도 함께 삼켜버린 바다입니다. 진도 앞 바다에 잠긴 저는 외롭고 쓸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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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그날은 봄 기운이 완연했습니다. 전날 밤 인천항을 떠난 저는 그날 오전 8시48분 진도 앞 바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4명을 비롯해 총 476명의 승객을 실은 채였습니다. 갑자기 균형을 잃고 몸이 기울더니 바닷속으로 천천히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살려 달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보고 싶다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 떨리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멀리서 해경 구조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저는 사고가 곧 수습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해경에 의해 승객들이 구조됐다면 제가 진도 앞 바다에 침몰한 일은 ‘사고’로 기억됐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날의 일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건이란 진실의 압력 때문에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문학평론가 신형철)입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라는 학자들의 진단은 그래서 적절했습니다.

 오늘로 저는 침몰 258일째를 맞습니다. 이제 ‘세월호’라는 제 이름은 대한민국의 전환점을 뜻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세월호’는 사건의 이름이며 이 사건이 보여준 불편한 진실에 대한민국이 응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제가 발견한 진실이란 이런 것입니다.

 먼저 정부의 한계입니다. 그날 제 몸이 막 기울기 시작했을 때 정부와 해경이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수백 명이나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해경이 가까이 접근하긴 했지만 객실 안까지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탑승자·실종자·사망자 수를 파악하지 못해 혼선만 부추겼습니다. 바닷속에서 떠오르는 시신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건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정부를 감시해야 할 언론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사고 당일 오전 11시1분.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명백한 오보였습니다. 실제 상황과는 다른 ‘해군 특수부대 350명 투입, 잠수팀 512명 작업 중’이라는 정부 자료를 그대로 받아썼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탐욕 또한 저의 침몰 사건이 드러낸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저는 출항해선 안 되는 배였습니다. 청해진해운은 2012년 일본에서 저를 데려와 4층에서 5층 규모로 불법 증개축을 했습니다. 저는 기형적으로 커진 몸뚱이로 바다 위를 떠다닌 셈입니다.

 제 몸의 중심을 잡는 평형수도 기준치(1565t)의 절반(761t)밖에 채우지 않은 채 항해에 나섰습니다. 화물을 더 많이 실어 이윤을 최대로 내려는 탐욕이 위험을 불렀습니다. 과적이나 불법 증축을 관리·감독해야 할 한국해운조합·한국선급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체 했습니다. 이른바 ‘해피아’(해양수산부 관료 출신)가 장악한 이들 기관은 웬만한 불법은 눈을 감아주는 게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저의 침몰로 드러난 정부·시장의 한계는 대한민국에 ‘소리 없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는 자원봉사를 자청한 수많은 시민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어 20~30명의 릴레이 봉사를 이끈 윤효진(33)씨 같은 이들 말입니다. 수개월째 생존 학생들의 진로 상담 등을 돕고 있는 김민후(28·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씨 역시 정부와 시장의 한계를 메워주는 시민입니다.

 지금은 정부와 시장의 한계를 자조하고 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제라도 그 한계를 시민 사회가 보완하는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할 시점입니다. 관료, 기업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올곧게 서야 합니다. “세월호의 선장, 회사 임직원, 공무원 등 관여했던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시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을 발휘했다면 참사로 이르는 악순환은 없었을 것”(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이란 지적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정부와 시장이 시민사회와 결합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제가 바닷속으로 기울어지던 순간 객실에서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건넨 그 말이 제겐 대한민국을 향한 질문으로 들렸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란 배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혹한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을까요. 시민 사회가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평형수는 시민입니다. 시민이 평형수 역할을 해낼 때 정부와 시장이 중심을 잡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정강현·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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