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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미화 논란, 뼈저리게 아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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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제5공화국' 주연들. 오른쪽부터 홍학표(장세동 역), 서인석(노태우 역), 이덕화(전두환 역), 이진우(허화평 역), 차광수(허삼수 역).

"5공 인사들이라고 해서 오로지 사사로운 목적으로만 정권을 잡았겠나. 문제는 그들이 말한 '애국'의 논리다. 극히 편향적이고 극우적인 그 논리를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싶었다."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제5 공화국' 제작을 지휘한 MBC 임태우 PD. 생존 인물들이 대거 실명으로 등장한 이 드라마는 방영내내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드라마 초기 '전두환 미화' 라는 비판이 일더니 극이 진행되면서는 거꾸로 관련 인사들로부터 '의도적인 5공 죽이기'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5공인사들은 더나아가 법적대응을 공언하고 나섰고 박철언 전 의원의 경우 이미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드라마는 막을 내렸지만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임 PD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5공을 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두 방향의 비판 모두가 제작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특히'전두환 미화 논란'등에 대해선 "뼈저리게 아프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의도는'5공의 논리'가 "가당치 않은 것"이라는 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했는데, 일부에서'5공의 논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의외의'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5공 인사들은 이런 현상이 드라마상의 지나친 과장과 왜곡에 따른'역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으론 '객관성이냐, 극적 재미냐'라는 역사드라마의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도 여러가지 평가가 나왔다. 비판적인 쪽에선 이를 두고 드라마가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임 PD는 "극적 재미를 희생하더라도 객관성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했다"고 말했다. 드라마상에서 배경음악을 절제하고 실제 화면을 삽입하는 등 다큐멘터리 방식을 차용한 것도 이때문이란 설명이다.

80년대의 어두운 면에 비해 밝은 면, 예컨데 경제 성장과 같은 부분은 다소 가볍게 다뤄지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내용적 균형 감각에 대한 지적이라면 타당한 면이 있다"고 일면 수긍했다. 그러면서"무엇보다 정치드라마로서 정치적 주요 국면을 조명하는 것이 기획의도였고, 시간적 한계 등으로'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 PD와의 일문일답.

-5공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등 많은 논란이 일었다.

그쪽에서 공식적으로 세번의 자료를 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우리가 확보한 자료와는 상당히 다르다. 더구나 그쪽에서 지적하는 내용들이 세세한 내용이 아닌 드라마의 본류와 관계된 것이어서 우리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지막회에서 이들의 주장을 요약해 방송한 것도 반론권을 인정해 준 것일 뿐이다.'공화국 시리즈'는 MBC의 고유 브랜드로 한 두 사람에 의해 기획되는 것이 아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정치적 음모론 등도 전혀 근거가 없다.

-담당 PD로서 5공을 보는 기본적 관점은 어떤 것이었나.

연출을 맡으면서 드라마가 어떻게 가야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나라는 정말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각에선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시점이 5공이 시작되고 막을 내리는 시기였다. 그 시기를 뒤돌아본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돌아 본다는 의미가 있다. 예컨데 왜 군부정치가 끝난 시점에서 다시 군부가 등장해야했는가도 중요한 테마다. 5공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이후 5.18, 6월 항쟁, 6.29 선언 등 민주화의 새로운 국면을 만든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짚은 것도 그때문이었다.

-역사를 다룬 드라마로서 그 시대의 어두운 면에 비해 경제성장 등 밝은 면에 대한 언급은 인색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내용의 균형감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제약 등으로 모든 내용을 다룰수 없는 제작진으로서는'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면에서 5공의 치적을 다소 가볍게 다루었다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치적과 관련해 다루지 않은 게 뭐가 있나. 개개인의 인물묘사에서도 터무니없이 일방적으로 왜곡하거나 희화하한 것은 없다. 각 인물과 관련한 선정적인 이슈들도 많았지만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

-논란에 비해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정치드라마인 만큼 시청률보다는 객관적인 묘사에 중점을 뒀다. 제5공화국은 다른 드라마처럼 판타지가 없다. 어둡고 잔인하고 불쾌한 이야기다. 시청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부분이 없다는 얘기다. 만약 시청률을 우선했다면 감정신이나 심리묘사에 집중했을 것이다. 전두환이나 장세동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같은 경우 아마 다른 드라마였다면 10배 이상 강조했을 것이다. 음악도 최대한 절제하고, 감정개입 없이 냉정하게 간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 원칙을 끝까지 유지했다.'감정의 흐름을 끊는다'는 비판을 받아가며 다큐기법을 쓴 것도 그때문이었다.

-전두환, 허화평 미화론 등 인물의 묘사를 놓고도 논란이 있었는데.

허화평은 '문제적 인물'이다. 권력게임 과정에서 전두환에 강력하게 대응해가는 모습이 시청자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공과가 함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요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논리가 자꾸 바뀐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라고 순전히 사사로운 목적으로 정권을 잡았겠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애국'이라는 말하는 논리는 편향되고 극우적인 방식이다. 전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하지만 그 논리는 객관적으로 보면 가당치 않은 논리일 뿐이다. 그런 논리가 30~40년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다. 예컨데'나라가 어려우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각인된 논리다. 드라마는 그런 부분을 이제 객관적으로 보자는 의도였다. 결코 개인에 대한 인간적.도덕적 판단을 내리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뼈저리게 아픈 것은 이 드라마를 놓고 그들의 논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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