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 문화재와 국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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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는 최근 유네스코(UNESCO)의「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 가입함으로써 해외로 불법 반출된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관련국에 반환을 촉구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이 협약은 1970년에 체결돼 현재 5l개국이 가입하고 있으며『모든 국가가 자국의 고유한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것도 존중할 도덕적 임무』를 규정한 것으로, 문화재 보호에 관한 일종의「국제 양심선언」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는 수차래 외족의 침략을 당해 귀중한 문화재를 강압적으로 빼앗긴 입장이며 뒤늦게나마 이 협약에 가입하여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국제적 조류에 동참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한국 문화재의 불법 반출은 주지하다시피 주로 임신왜란과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역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임난 중에 고려불화, 범종, 회화 등 1백여 점이 약탈당한 것으로 추산되며 도기 등은 파악할 수도 없는 숫자다. 이 때문에 한국에는 고려 불화가 호암미술관에 2점 있을 뿐이다. 보다 대규모의 문화재 수탈은 36년간의 식민지 역사에서 자행됐다. 당시 일본인들은 헌병을 앞세워 창령의 낙동강유역, 경주·공주·부여·개성·평양 일대의 고분군 수만기를 파헤친 일도 있었다.
수장품을 도둑질하기 위해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당했다.
일본에는 고려자기가 우리보다 더 많다. 일본의 문화재 수탈은 도굴에만 그치지 않고 그림, 전적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쳐 현재 일본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는 작게 잡아 2만 점, 크게 잡으면 7만점까지 추산하는 전문가도 있다. 대략 해외 유출 문화재의 80%가 일본에 집중돼 있다.
그밖에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우리 문화재를 약간씩, 그러나 한국에는 없는 귀중한 것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에 유네스코의「문화재 협약」에 가입했다고 해서 반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협약은 협약체결 이후의 문화재 불법반출을 강력히 단속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과거에 이미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은 모호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협약 제2조⑵항은『당사국은 가능한 수단을 통하여(출처국의 문화유산을 고갈시키는)원인의 제거, 현재 행위의 중지 및 필요한 복구의 협조』를 하기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반환은 당사국의 우호적인 배려가 없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실정이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는『오밸리스크」의 반환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이집트의 실랑이를 상기하면 실질적인 반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가 짐작된다.
이집트는 이 첨탑이「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통해 강제 반출된 것이라 주장하나 프랑스는 당시 이집트 군주로부터 정식 기증 받은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외국 문화재 보유국인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이 협약에의 가입을 적극 반대하고 있고 미국조차 가입을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이같은 이기적 처사는 도덕적 규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문화재는 그 기원, 역사 및 전통적 배경과 함께 이해되어야하지 엉뚱한 장소에 있는 것은 넌센스다. 피라밋은 어디까지나 나일강의 산물이지 센강이나 탬즈강의 산물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일단「문화재 협약」에 가입한 이상 우리 문화재 보유국과의 신중한 외교 교섭을 통해 문화재 반환 교섭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기존 문화재의 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모든 문화재의 소재를 파악. 일단 기록에 올려놔야 불법반출의 원인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역사를 연면하며 민족의 주체성을 인식시켜줄 귀중한 정신적 물질적 자료이기 때문에 당국의 각별한 정책적 배려가 있기를 새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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