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백50년전 뿌리내려… 강건너면 「주자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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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며 울창한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마을은 보기만해도 아늑하다. 전남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마을앞을 영산강상류 영벽강이 흐르고 가뭄을 모르는 능주들 5백정보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옛날 능주목사가 거처하던 곳이기 때문에 목사골이라고도 부르는 이 조그마한 동네가 바로 신안조씨의 시조 청계공이 터전을 잡은 이후 7백 50년동안 주씨가문이 뿌리를 박고 사는 동네다.
『청계공께서 원 과 고려의 수색를 피해 이름도 적덕이라 고치고 숨어지내던 곳이라우.』 주자묘를 지키는 27대종손 주병섭씨(66) 『시조이래의 터전이지만 핍박을 받던 가문이기 때문에 많이 살때도 1백여가구밖에 안됐고 지금은 40여가구만 남아 그저 명백을 유지할뿐』이라고 했다.
집성촌인 남정리에서 영벽강을 건너 2㎞남짓 가면 무등산줄기 연주산 중턱에 원시조 주자묘가 있다.
78년 문중에서 1억여원을 모아 3천평의 대지에 마련한 사당안에는 주자의 영정이 봉안돼있다.
매년 10월 9일 주씨문중과 일부 유림이 모여 향사를 지낸다.
사당은 35계단을 거쳐 오른다. 대문승경문을 지나면 중앙에 주묘가 있고 오른쪽엔 회덕재, 왼쪽엔 영모당.
종손 병섭씨는 『우리나라에 온 시조는 청계공이지만 신안주씨를 대표하는 인물이 주자이기 때문에 시조를 주자로 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맨처음 터전을 잡은 이곳에 사당을 지었다』며 앞으로 청계공사당도 지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목사골복판에는 이곳의 터줏대감답게 2백여년된 주씨집안의 낡은 고옥들이 옛 영화를 말해주듯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2백여평의 대지에 행랑채와 안채, 정원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정래혁국회의장의 처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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