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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파리에 들렸던 한국여성 한분은 언젠가 거리의 카페에서 콜라를 주문했다가 그만 기급을 했다. 콜라를 병째들고 온 가르송(남자시중꾼)이 그 여성앞에서 병을 사타구니에 꼭 낀 다음 병마개따개로 마개를 연 때문이다.
한손에 컵과 쟁반, 다른 손에 콜라병과 병마개따개를 든 가르송으로선 그런 방법이 효과적인 서비스(?)일 수도 있겠으나 아뭏든 상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 한국여성은 『천하에…』하며 얼굴을 붉히고는 끝내 그 콜라를 마시지 못했다.
파리거리에 즐비한 카페에서 언제나 볼수 있는 광경이지만 처음 겪는 사람에겐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어디 콜라병뿐인가. 탁자가 요란하게 음료수병이나 찻잔을 내려놓고 거스름돈을 줄때도 거의 집어던진다.
코피가 엎질러지고 동전이 땅바닥에 떼구루루 굴러도 별로 미안한 기색이 없다.
차를 주문하고 반시간을 기다려도 가져오지 않아 재촉이라도 하면 더 들은 체도 않는다.
담배가게도 한가지다. 대부분 카페안에 담배판매대가 있게 마련이지만 알량한 담배한갑 사느라고 주인의 용무가 끝날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하는게 보통이다.
용무라고 해야 아는 사람과의 잡담, 돈계산 등이 십상이지만 그가 뭐든 하고 있는 동안은 손님이 코앞에 와서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얼마전 프랑스시사주간지 「르·프앵」에 국민들이 날이 갈수록 예의없고 불친절해져가는 것을 개탄하는 글이 실렸다.
『불친절과 무래가 프랑스에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예들을 열거했다. 방문객의 면전에서 문을 세차게 닫아버린다거나 안녕히 계십시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란 인사말을 끝내기도 전에 송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거리의 신문판매대엔 이런 글귀가 적힌 종이쪽지가 붙어있다.
『귀찮게 묻지마시오!』 살게 있으면 돈내고 가져가고 쓸데없는 말을 걸지말라는 얘기다.
어떤 사무원 책상에는 『나는 심장이 약하니 내게 큰소리로 말하지 마시오』란 팻말이 점잖게 놓여 있기도 하다.
「르·프앵」의 이 기사는 『어쩌다가 프랑스사람들이 이 모양이 됐는가』고 자문하고 『당신에게 ××할수 있는 영광을 갖게된 것을 무한히 감사하며…』라든가 『당신에게 마음으로부터의 크나큰 경의를 표합니다』 등 특히 프랑스말에 많이 등장하는 범절있는 용어들이 사어가 돼가고 있는 것을 못내 안타까와했다. <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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