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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젓가락문화(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우리는 애를 업어기릅니다. 업고 업히는 이 인간관계는 성장한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읍니다. 업어 준다는 것은 내가 남을 완전히 떠맡는다는 것이고 업힌다는 것은 남에게 완전히 내 맡긴다는 것입니다. 이 「업고 업히는 관계」에 의해서 얽히고 설킨것이 젓가락문화권의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읍니다.
다만 상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른이 된뒤에도 우리는 환자나 부상자가 생기면 으례 업습니다. 또 위급할때 남에게 업히는 것은 그렇게까지 창피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효」를 뜻하는 한자를 자세히 뜯어보십시오. 그것은 아들(자)이 늙으신(노)어버이를 업고있는 형상을 나타낸 상형이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르칠 「교」역시 남을 업는법, 효도하는 법을 가르친다는데에서 생겨난 글자인 것이지요.
서양사람들의 풍습에는 「업고 업히는 것」이 없읍니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포옹속에 상징됩니다. 안아 주는 것. 애나 남녀만이 아니라, 남자와 남자끼리도 반가운 인사로 서로 끌어안고 뺨에 입을 맞추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무언가 거부감이 생겨나는 광경이지요. 내가 아주 사소한 일로 외국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던 것도 실은 「업는 문화」와 「포옹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었읍니다.
프랑스에서 실존철학자 「브리엘·마르셀」을 만났을때의 일입니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그의 아파트까지 모셔다드렸지요.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기때문에, 이 80노객은 계단 중턱에서 숨을 헐떡이며 몇번이나 쉬어가지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런데 2층은 층계까지 올라와서 너무 괴로와 하기때문에, 경로사상이 철저한 그리고 겁이 나기도한 이 한국인은 엉겁결에 등을 들이대고 업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이 철학자가 고마와하기는 커녕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웬만한 부상을 당해도 어깨를 부축해주는 정도이고 아주 심하면 머리와 다리를 들고 가거나 들것에 다 싣고 가는 것이 서양사람들입니다.
업어주는 습관, 업혀서 자란 경험이 없어서 입니다.
문학작품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첫손꼽히는 단편소설 『메밀꽃필무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 그 감동적인 장면을 잊지않고 있을 것입니다. 동이가 허생원을 자기 아버지인줄도 모르면서도 등에 업고 냇물을 건너는 그 아름다운 말입니다. 허생원은 냇물에 빠져 옷이 흠뻑 젖어있었기 때문에, 거의 맨살을 대는 것처럼 동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낍니다.
허생원은 동이에게 업힘으로써 외롭게 살아온 반평생을 의지할 때 떠돌아다닌 장돌뱅이의 한을 푸는것이지요. 포옹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없는 한국적인 정감의 세계이지요. 『메밀꽃 필 무렵』만이 아닙니다. 웬만큼 이름난 소설장면가운데 「업는」장면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닙니다. 『춘향전』을 봐도 이도령과 춘향의 만남은 포옹이 아니라, 「업어주기」의 놀이로부터 시작되고 있지않습니까.
같은 젓가락문화권에 속해있는 일본문학에서는 「업는 장면」은 감동적인 정경으로 자주 나타납니다. 석천축목이라는 시인은 「내 장난삼아 어머니를 얻다가, 그 가벼우신 몸에 세발짝도 때지 못하였노라!」라고 시를 읊었읍니다. 너무 무거워서가 아니라 너무 가벼워서 걷지를 못했다는 역설에 이시의 감동이 있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몸무게를 전신으로 느낄 수있는 「업는 문화」그자체에, 그 뻐근한 감동의 원천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포옹의 문화는 상대방의 몸무게를 느낄수가 없읍니다. 수평적인 인간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포옹은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끌어안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등하게 접촉을 해서결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업는 문화는 업고 업히는 수직적인 인간관계이므로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상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결합입니다.
어려서는 어머니에게 업혔고, 커서는 어머니를 업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 우선 내가 업어 주어야할 사람인가 혹은 내가업혀야될 사람인가를 가늠합니다. 하다못해 차한잔을 마셔도 (이제는 서구화하여 없어져가고 있지만) 업할사람과 업어주는 사람이 이심전심으로 결정됩니다. 돈을 내는 사람이 업는 사람이고 빈손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업혀가는 사람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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