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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 신해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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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故) 신해철(왼쪽에서 두번째)과 015B 멤버들이 함께 찍은 사진. 015B는 무한궤도 해체 후 멤버 정석원씨가 만든 새로운 그룹이었다. 신해철은 015B 1집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사진 문학동네]

고(故) 신해철(1968~2014)의 마지막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24일, 우리에게 왔다. 유고집 『마왕 신해철』(문학동네)이 데뷔 26주년 기념일에 맞춰 출간됐다.

 아내 윤원희씨가 유품을 정리하던 중 고인의 컴퓨터에서 글뭉치를 찾아냈다. 고인은 생전에 자서전 출간을 준비했던 것처럼 ‘북(Book)’ 폴더에 자신의 인생을 차분히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윤씨는 남편의 마지막 이야기를 팬들과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출간을 서둘렀다.

 고인은 달변가였다. 어떤 주제가 주어져도 막힘이 없었다. 지적이고 유머와 촌철살인(寸鐵殺人·간단한 말로 사람을 감동시킴)이 있었다. 유고집은 그의 말을 닮았다. 문장은 신해철이 말하듯 생생하게 살아난다. 편집자 박영신씨는 “고인의 육성을 해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교정을 보고 원문 그대로 실었다”고 설명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1부 ‘나, 신해철’이다. 골목대장이었던 유년기와 음악에 심취했던 청년기의 내밀한 고백을 낡은 흑백 사진과 함께 시대순으로 풀어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람들이 말하는 카리스마를,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감수성과 사고의 탄력성을 물려받았다’고 적었다. 뽀얗고 이지적인 이미지 때문에 부유하게 자랐을 것 같지만 그는 서민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꿈은 번데기 장수였다. 변변한 장난감 없이 진흙탕을 뛰놀았고, 중학생 때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 보리차 장사를 하며 생계를 도왔다.

 ‘무한궤도’를 결성해 88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에피소드는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고인은 음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년 시절부터 나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전형적인 성공적 인생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어떠한 종류의 삶도 결국 죽음이라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어차피 죽는다면 그 순간까지 무엇을 해야 덜 지루할까. 결국 음악밖에 없었다.’ 그는 음악 때문에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2000년대에 들어 고인은 ‘소셜테이너’로서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했다. 이 내용은 2장 ‘마왕, 세상에 맞서다’에 실렸다. 오랜 친구인 허수경 시인은 “내가 아는 한 그는 약한 이들에게 공손했고, 강한 이들에게는 떳떳하게 자신을 주장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발언은 제도권 인사들을 불편하게 했을지언정, 청년들에겐 따뜻한 위로였고 약한 이를 감싸 안는 목소리였다. 이는 서태지·황석영·손석희·배철수·문재인 등의 추모글에도 오롯이 전해진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이렇게 썼다.

 “바보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 무명 신인의 음반일지언정 한 가지라도 미덕을 찾아내고자 했던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다양한 악덕에 대해 온몸으로 분노한 사람…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었다.”

 유고집과 함께 대표곡 50여 곡을 담은 베스트 앨범 ‘리부트 유어셀프’도 24일 발매됐다. 유작 ‘핑크 몬스터’가 실린 이 앨범은 2500장 한정판으로 나왔으며 발매 즉시 품절됐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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