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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울면 안 돼, 이상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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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상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 시즌을 혹독하게 보내고 있다. 이 감독이 맡은 삼성은 최다 실점·실책, 최소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처졌다. [중앙포토]

최근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극한 직업의 세계를 다뤘다. 63빌딩 외벽청소, 1050m 땅속 탄광에서 석탄 캐기, 10㎏ 굴 까기 등이었다. 프로농구 팬들은 이상민(42) 서울 삼성 감독을 두고 “꼴찌 감독도 극한 직업”이라며 안쓰러워 하고 있다.

 삼성은 23일 인천 전자랜드에 46-100, 54점 차로 졌다. 프로농구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10월 15일 KCC가 모비스에 당한 43점차(58-101)다.

 현역 시절 챔피언결정전에 7차례나 진출한 이 감독은 이기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올 시즌 삼성 지휘봉을 잡고는 지는 게 더 익숙해져버렸다. 9연패와 6연패를 한 차례씩 하며 7승23패로 꼴찌다. 반환점을 돌았는데 플레이오프(PO)행은 일찌감치 물 건너간 모양새다. 삼성은 이날 실책을 18개나 범했다. 2점 슛 성공률이 29%(11/38)로 전자랜드 성공률 69%(27/39)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 감독은 28-52로 지고 있던 3쿼터 작전타임 때 선수들에게 “농구를 하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라며 호통을 쳤지만 소용 없었다.

 삼성 팬들은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과 맞붙어도 지겠다”, “차라리 이 감독이 정장을 벗고 뛰는 게 낫겠다”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현대(KCC 전신)에서 이 감독과 한솥밥을 먹은 유도훈(47) 전자랜드 감독은 “내가 점수를 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같은 감독으로서 안타깝다”고 오히려 미안해했다. 이 감독은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최다 점수차 패배 맞나요”라고 물은 뒤 “다시는 이런 경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나부터 반성하겠다”고 착잡해했다. 일각에서는 선수들의 태업 의혹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 삼성에서 뛴 이상민 감독과 이규섭(37) 코치는 선수들과 관계가 좋다. 이 감독은 “나도 선수생활을 오래 해 봤지만 이런 경기는 처음이다. 선수들이 힘들 것 같다”고 오히려 선수들을 걱정했다.

 냉정하게 볼 때 삼성 선수들은 실력과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삼성은 이동준(4억원), 이정석(2억5000만원), 송창무(2억3200만원), 이시준(2억2000만원), 차재영(1억8000만원) 등 고액 연봉자들이 즐비하다. 혼혈선수 이동준의 올 시즌 평균득점은 5.67점에 불과하다. 송창무(평균 2.12점), 차재영(평균 4.37점)도 부진하다. 키스 클랜턴과 박재현은 부상으로 오래 빠졌다가 최근 복귀했고, 임동섭과 김동우도 부상 중이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리오 라이온스(평균 20.63점)와 국내 신인 전체 2순위 김준일(평균 13.33점)만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이 감독은 목이 쉴 만큼 수비 패턴을 지시한다. 그러나 삼성은 평균실점 80.9점으로 꼴찌다. 리바운드도 최하위(34.2개), 실책 1위(11.8개)다.

 운도 안 따른다. 삼성은 지난 11월 6일 동부전에서 4연승에 도전했지만 58-60으로 석패했다. 3연승에 도전한 21일 동부전에서도 75-76으로 분패했다. 종료 직전 라이온스가 버저비터 골을 넣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무효로 판정됐다. 같은 초보지만 3위로 잘 나가는 김영만(42) 동부 감독에게 당한 패배다.

 삼성은 2002∼03 시즌부터 9시즌 연속 PO에 진출했다. 하지만 최근 3시즌중 한번만 PO에 나갔다. 리빌딩과 전력보강에 실패한 탓이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한 김승현(36)의 공백도 아쉽다. 이 감독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한 농구인은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삼성과 비슷한 멤버로 5위(14승14패)다. 이 감독이 모비스를 맡았다면 과연 1위를 하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유재학(51) 모비스 감독은 1999∼2000시즌 신세계(전자랜드 전신)에서 꼴찌를 했을 때 지도자를 그만둘까 생각했다고 한다. 유 감독은 “지인이 노래방에서 ‘사노라면’을 불러줬다.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는 가사를 듣고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진 그는 프로농구 최다 우승(4회) 감독이 됐다. 사령탑 첫 해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상민 감독에게 봄은 언제쯤 올까.

한편 24일 경기에서는 kt가 2쿼터에 올 시즌 한 쿼터 최소 득점(3점)을 기록하고도 동부에 69-61로 승리했다. 인삼공사는 KCC를 78-73으로 꺾었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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