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 D-10 사상 첫 여성 총리 나올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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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18 독일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까지 나온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민당의 패배와 최대 야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의 승리가 유력한 분위기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신호(5일자)에서 "슈뢰더 총리의 이번 선거유세는 작별여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베를린 RBB 방송의 우테 슈마허 정치담당 기자는 6일 "선거일까지 사민당의 대역전 드라마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어판은 5일 "기민.기사 연합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당수가 독일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면 자유시장경제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 정권교체 가능성=최대 야당인 기민.기사 연합은 8월 이후 43%대의 안정적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연정 파트너 후보인 자민당의 지지율(7%)까지 합하면 과반수 의석 확보가 무난하다. 반면 집권 사민당은 기민.기사 연합과 10%포인트 가량 떨어져 있다. 4일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총리 간의 TV토론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따라잡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의 지지율도 10%에서 7%로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때 10% 안팎의 지지를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좌파정당의 기세도 8월 이후 수그러들고 있다. 현실 불만 세력을 부추기며 좌충우돌식 비판에 열중하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 선거 쟁점=예정보다 1년 앞당겨 실시되는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은 '누가 독일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이다. 슈뢰더 총리가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독일 경제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 호조로 거시 지표는 회복세를 보이지만 내수세가 살아나지 않아 체감 경기는 여전히 썰렁하다. 특히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강행하다 보니 고용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실업자가 470만 명으로 실업률은 11%에 달한다.

집권 사민당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정책의 완수가 필수라고 주장하며 정책의 지속성을 위해 사민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2002년 총선 승리 후 집권 초반에 제시한 포괄적인 개혁 프로그램인 '어젠다 2010'이 사민당의 기본 정책이다.

반면 기민.기사 연합의 선거 구호는 단순 명쾌하다. 경제성장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기민.기사 연합은 어정쩡한 개혁이 아니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친기업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종업원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해고방지 조항 적용 유예 등 노동시장 유연화가 그 핵심이다. 또 현행 16%인 부가세를 18%로 인상하는 공약도 채택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메르켈 당수는 누구

"동독의 뿌리를 갖고 통일 독일의 정치가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독일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유력시되는 앙겔라 메르켈이 4일 슈뢰더 총리와의 TV 토론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메르켈의 원뿌리는 서독 함부르크다. 메르켈이 동독 브란덴부르크주 템플린으로 이주한 것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인 1954년 말이었다. 루터파 교회 목사였던 메르켈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79)는 "목사직을 가진 사람은 의무가 있으며,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공산 동독의 주민들에겐 목사가 필요했다"며 이주하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동.서독 국경 장벽(61년 건설)이 없어 비교적 자유롭게 양측 지역을 오갈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유를 찾아 동에서 서로 떠났다. 공산주의자이거나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니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간 독일인은 거의 없었다. 메르켈 가족의 동독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 카스너는 "게토(유대인 집단거주지역) 같은 데서 살았다"고 회고했다. 함부르크에서 라틴어와 영어를 가르쳤던 어머니 헤를린트는 교사직마저 박탈됐다. 어머니처럼 어학 실력이 뛰어났던 메르켈은 교사나 통역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목사인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이 또한 제지를 받았다. 대신 그녀는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동베를린 과학아카데미에서 일했다.

메르켈이 정치와 인연을 맺은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인 89년 동독의 민주화 단체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메르켈은 헬무트 콜 총리의 기민당에 들어가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자연보호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기민당 내에서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동독에서 생활한 경험이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친미 성향을 보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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